바야흐로 NBA는 포인트가드들의 전성시대다. 러셀 웨스트브룩, 토니 파커, 라존 론도 등 포인트가드들이 NBA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대부분의 강팀에 확실한 포인트가드들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포인트가드는 좋은 성적의 보증수표다. 젊은 포인트가드들이 점점 리그를 지배하는 사이, 상대적으로 조용히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노장 스타들이 있다. ‘패스 마스터’로 불리는 스티브 내쉬와 제이슨 키드다. 내쉬와 키드는 묵묵히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스티브 내쉬 | Steve Nash 37, 191cm
▲ 축구선수 아들로 태어난 ‘백투백 MVP’
내쉬는 1974년 2월 7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났다. 그는 여행을 좋아하는 부모님을 따라 어린 시절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내쉬의 가족은 축구선수인 아버지가 은퇴하고 나서야 캐나다에 정착했다.
내쉬는 운동선수였던 아버지를 닮아 여러 운동에 소질을 보였다. 축구와 아이스하키, 농구를 즐기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중에서 특히 농구에 애착을 보였다. 그가 농구를 시작한 이유는 노력으로 신체능력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의 실력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명성이 자자했다. 지치지 않는 체력과 스피드로 상대를 제압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평균 21점 9.1리바운드 11.2어시스트로 캐나다 최고의 유망주다운 실력을 입증했다.
하지만 그는 캐나다에서만 유망주였을 뿐 미국에서는 무명이었다. 20개가 넘는 미국 대학에 지원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많은 명문학교에 거절당한 내쉬는 우여곡절 끝에 산타클라라 대학의 장학금 제의를 받아 농구인생을 이어갔다.
그는 대학 입학 후 지독한 연습으로 실력을 늘렸고, WCC(West Coast Conference)토너먼트 MVP를 수상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팀 전력이 약해 NCAA 우승은 넘볼 수 없었던 것. 결국 그는 NBA 진출하기 전까지 NCAA 정상에 서지 못했다.
내쉬는 대학시절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1996년 NBA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1라운드 15번픽으로 피닉스 선즈에 지명된 내쉬는 케빈 존슨(45, 185cm)과 제이슨 키드(38, 193cm)의 백업 역할을 맡았다. 워낙 쟁쟁한 두 선수들이 있어 그는 출전시간을 부여받기 힘들었다. 평균 10.5분을 뛰며 3.3점 2.1어시스트에 그쳤다.
이후 댈러스 매버릭스로 트레이드 된 그는 실력이 급성장했다. 마이클 핀리(38, 201cm), 덕 노비츠키(33, 213cm)와 함께 화끈한 공격으로 댈러스를 강팀 반열에 올려놓았다. 우수한 성적에 그는 올 NBA 팀에 뽑히며 기량을 인정받았다. FA가 되었을 때는 친정팀 피닉스와 5년 50mil의 장기계약을 맺었다. 당시 피닉스는 많은 비난을 받았다. 30살에 접어드는 그의 나이와 평범한 운동능력, 약한 수비력이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내쉬는 평가를 뒤엎었다. 피닉스의 런앤건(Run&Gun) 농구를 이끌며 플레이오프에 단골로 진출하는 강팀으로 만들었다. 비록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달리는 농구로 가능성을 보여줬다. 또한 2차례나 MVP를 받아 최고 선수 대열에 합류했다.

▲ 연습벌레의 노력이 낳은 ‘최고의 슛 감각’
NBA 선수들의 수비를 뚫는 것은 험난한 길이다. 거친 몸싸움과 트래쉬 토크에 평정심을 잃고 연습 때는 백발백중이던 슛이 실전에서는 수비에 막혀 림을 외면하기 일쑤다.
내쉬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슛 성공률이 높기로 유명하다. 자유투 성공률과 3점슛 성공률 등 슛에 관해서는 NBA 최고 수준이다. 그는 조금이라도 상대의 수비가 허술해지면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정확한 슛으로 차곡차곡 점수를 쌓는다.
그의 능력은 기록에서 잘 나타난다. 내쉬의 통산 야투 성공률은 49.1%. 그가 포인트가드라는 것과 출전시간 내내 상대수비의 견제를 감안하면 엄청난 기록이다. 또한 90.4%의 자유투 성공률과 42.8%의 3점슛 성공률도 경이로울 정도다. 슈팅 능력만큼은 NBA 역사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뛰어나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슈팅 능력에 사람들은 내쉬를 타고난 슈터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능력은 타고난 재능보다는 노력이 낳은 결과다. 그는 철저한 자기관리로 유명하다.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고, 누구보다 많이 노력하기에 운동능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이러한 내쉬의 노력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연습 동영상을 보면 어느 위치를 가리지 않고, 슛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어느 위치에서든 득점하기 위한 연습으로 현재의 내쉬를 만든 밑거름이다.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는 노력으로 운동능력의 한계를 극복한 최고의 노력형 선수다. 내쉬가 게을러지지 않는다면 그는 향후 2~3년 동안 현재의 실력을 유지할 것이다.
▲ 피닉스의 심장 내쉬, 우승을 위해 결별?
운동선수들의 전성기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다. 대부분 이 나이가 지나면 체력과 스피드, 점프력 등 여러 가지 부문에서 문제를 드러낸다. 노장선수들은 신체능력의 저하로 젊은 선수들을 따라가지 못해 ‘퇴물’ 소리를 듣는다. 노련미로 극복 할 수 있겠지만, 한계는 분명히 있다. 그만큼 운동선수들에게 많은 나이는 독으로 작용한다. 특히 신체조건이 중요한 농구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하지만 내쉬는 시간의 흐름에서 제외 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는 우리나이 39살의 노장. 지금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나이가 많다. 운동선수로서는 환갑이 지난 나이.
23살에 NBA에 데뷔한 내쉬는 올 시즌까지 16시즌 동안 댈러스와 피닉스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그동안 출전한 경기도 1300경기에 달한다. 많은 나이 탓에 실력이 줄어들 법도 하지만 여전히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는 올 시즌 평균 31.6분의 출전시간을 부여받아 10.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11.7개로 1위에 오른 라존 론도에 1개 뒤진 2위 기록이다. 론도보다 5분 적은 출전시간을 감안하면 1위라고 해도 무방하다. 엘빈 젠트리(57) 감독의 철저한 출전시간 관리 속에 이루어낸 값진 성적이다.
하지만 그도 못 이룬 것이 있다. 모든 선수들이 염원하는 우승이다. 한때 우승할만한 전력을 갖췄지만, 결국에는 파이널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현재는 2000년대 중반, 팀의 주축 선수들이 떠나 플레이오프도 장담할 수 없는 약체가 됐다. 가끔 깜짝 놀랄만한 모습도 보여주지만 여전히 우승을 노리기에는 부족한 전력이다.
그도 현재 상황을 알기에 팀에 전력보강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대로 피닉스는 강해지지 않았다. 몇몇 유망주들이 있지만 리그의 판도를 바꿀만한 실력은 아니다. 즉, 앞으로도 우승을 노릴만한 팀이 아니라는 것. 피닉스에 남게 되면 우승 확률은 희박하다. 그가 우승하기 위해서는 강팀으로의 이적이 필요하다. 때문에 최근 수면위로 올라온 시카고 불스행 루머도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그가 피닉스에서 은퇴하는 것도 아름답지만, 무관의 제왕으로 남기에는 아쉬운 선수다. 만약 이적한다 해도 그를 비난하는 팬들은 없을 것이다. 오랜 기간 피닉스에 헌신했기 때문이다. 그는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한 인물이다. 팬들은 그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
제이슨 키드 | Jason Kidd 38, 193cm
▲ 한 시대를 풍미한 ‘Captain Kidd’
키드는 1973년 3월 23일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오클랜드에서 유년기를 보낸 키드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농구의 매력에 빠졌다. 어린 시절부터 키드는 득점보다는 화려한 패스를 즐겨하며 이름을 날렸다.
세인트 조셉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2년 연속 주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개인 성적과 팀 성적 모두 좋았기에 네이스미스상과 올해의 선수상도 휩쓸었다.
화려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키드는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가 진학한 캘리포니아 대학이 약체 팀이었기에 키드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키드는 “학교와 집이 가깝고, 학교가 추구하는 농구가 자신이 좋아하는 농구와 맞아서 선택했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키드의 실력은 대학에서도 통했다. 신입생 때 평균 13점 4.9리바운드 7.7어시스트 3.8스틸로 팀을 NCAA 토너먼트로 이끌었다. 키드가 이끄는 캘리포니아 대학은 LSU와 듀크 대학을 물리쳤고, 키드는 신인상을 수상했다. 또한 110스틸로 NCAA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기염까지 토했다. 2학년 때도 여전히 활약한 그는 대학을 마치지 않고 NBA 진출을 선언했다.
1994년 NBA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댈러스 매버릭스에 지명된 그는 첫 시즌부터 주전 포인트가드의 중책을 맡았다. 79경기를 선발로 출전, 11.7점 5.4리바운드 7.7어시스트 1.9스틸로 ‘코트의 신사’ 그랜트 힐(39, 203cm)과 함께 신인왕에 선정되었다.
다음해에 평균 16.6점 6.8리바운드 9.7어시스트 2.2스틸로 더욱 향상된 기량을 선보였다. 어시스트는 전체 2위, 스틸은 전체 4위에 해당하는 좋은 기록이었다. 올스타에도 뽑혀 NBA를 대표하는 스타가 됐다.
하지만 화려한 개인성적과 달리 팀 성적은 바닥이었다. 팀 동료 자말 매쉬번(39, 203cm)의 부상과 각종 불화, 불운으로 26승을 올리는데 그쳤다.
1996년에는 피닉스로 트레이드 되어 선수생활을 이어갔고, 1999-2000 시즌에는 앤퍼니 하더웨이(40, 201cm)와 ‘백코트 2000’을 이루면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샤킬 오닐(39, 216cm)과 코비 브라이언트(33, 198cm)가 버틴 LA 레이커스에 무너지며 탈락의 쓴잔을 마셨다. 이후 페니가 무릎부상과 뉴저지 네츠(현 브루클린 네츠)로의 이적이 겹치면서 ‘백코트 2000’은 해체되고 말았다.

뉴저지로 새 둥지를 튼 키드는 팀 전력을 극대화하며 챔피언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레지 밀러(46, 201cm)의 인디애나 페이서스, 폴 피어스(34, 201cm)의 보스턴 셀틱스를 차례로 물리치고 NBA 파이널에 진출했다.
상대는 피닉스시절 자신을 가로막은 레이커스. 당시의 레이커스는 최강의 팀이었다. 오닐은 여전히 최고의 기량을 자랑했고, 코비는 더욱 성장한 모습이었다. 상승세를 타고 있는 뉴저지라도 결코 넘을 수 없는 큰 산이었다. 결국 뉴저지는 0-4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다음 시즌에는 리차드 제퍼슨(31, 201cm), 케년 마틴(34, 206cm)과 함께 팀을 결승에 올려놓아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맞붙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챔피언이 되기에는 2% 부족했다. 팀 던컨(35, 211cm)과 데이비드 로빈슨(46, 216)의 ‘트윈타워’가 버틴 스퍼스에 무릎 꿇어 2년 연속 눈물을 흘렸다.
키드는 빈스 카터(34, 198cm), 제퍼슨과 함께 또 다른 ‘빅3’를 결성하며 뉴저지를 이끌었지만, 끝내 우승하는 데는 실패했다. 2007-2008시즌부터는 댈러스로 이적,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 슛이 아쉬운 ‘트리플더블 제조기’
NBA 선수들은 특출한 장점으로 NBA를 주름잡는다. 확실한 무기가 없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리그이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까지 다재다능함으로 기대를 모았던 선수라도 NBA에서 한순간에 사라지는 경우는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키드는 NBA에서 패스, 리바운드, 스틸 등 잘하는 것이 많은 다재다능한 선수로 불린다. 지금까지 통산 100회가 넘게 트리플더블을 작성, 리그를 대표하는 ‘트리플더블 제조기’다. 뉴저지 시절에는 포인트가드지만 높이가 낮은 팀 사정상 팀의 리바운드를 책임지기도 했다.
신은 공평하다 했던가. 다재다능한 그도 약점은 확실했다. 슈팅 능력의 부재. 그는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슈팅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통산 야투 성공률은 40.1%. 노쇠화가 극심한 올 시즌에는 36.3%에 그쳤다. 1998-1999시즌에 44.4%를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지만, 이후 40%를 넘기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여전히 낮다.
낮은 야투 성공률이 지속되자 ‘Ason Kidd’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탄생했다. ‘Ason’은 그의 이름에서 Jump Shot(점프슛)을 뜻하는 ‘J’를 뺀 것으로 그가 슈팅 능력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의 치명적인 약점이 반영된 별명이다.
또한 그의 약한 슈팅 능력은 그의 기록행진도 방해했다. 그는 전성기시절 누구보다 많은 트리플더블을 기록했다. 트리플더블을 하지 못하더라도 근접한 성적을 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가 아쉽게 트리플더블을 하지 못한 이유는 대부분이 득점 부족. 부족한 슈팅 능력이 그의 기록행진을 가로막는 것이다. 평균정도의 슈팅 능력만 갖췄어도 훨씬 많은 트리플더블을 기록했을 것이다.
▲ 친정팀에서 푼 우승의 한

NBA에서 우승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렵다. 최고의 기량을 가지고 있어도 찰스 바클리(48, 198cm), 칼 말론(48, 206cm), 존 스탁턴(49, 185cm)처럼 무관의 제왕으로 은퇴한 선수들이 많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48, 198cm)도 다년간의 노력 끝에 눈물의 우승을 차지했다. 그만큼 우승의 벽은 높다.
키드에게 우승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댈러스와 피닉스, 뉴저지를 거쳐 다시 댈러스에 복귀할 때까지만 해도 우승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NBA 결승에서 고배를 마신 것도 두 번이나 된다.
여러 팀을 전전하던 키드는 2007-2008시즌, 친정팀 댈러스에 복귀하며 우승을 위한 마지막 투혼을 불태웠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베테랑답게 최선을 다해 젊은 선수들을 이끌었다. 물론 댈러스에서도 우승은 쉽지 않았다. ‘천재가드’ 크리스 폴(26, 183cm)이 버틴 뉴올리언스에게 발목 잡혔고, 2008-2009시즌에는 천시 빌럽스(35, 191cm)에게 고전하며 가로막혔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우승을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2010-2011시즌 댈러스는 NBA 파이널에 올랐고, ‘숙적’ 마이애미 히트와 만났다. 이 시기에 마이애미는 빅3가 처음 뭉쳐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슈퍼스타 3인의 만남으로 강한 전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키드와 노비츠키 등 노장들의 활약에 젊은 마이애미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키드는 경기 조율과 수비, 노비츠키는 4쿼터 맹활약으로 마이애미 격파의 일등공신이 됐다. 감격스런 첫 우승이었다. 우승하지 못하고 은퇴할 줄 알았지만, 선수생활 끝자락에 소원을 성취했다.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키드는 우승이 결정된 뒤에야 환하게 웃었다.
사진- NBA 아시아, 서정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