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

[최창환의 백 투 더 KBL] 절망 끝에서 희망을 쏘다! 드래프트 2라운드 성공 신화

최창환 기자, 2012-01-30 00:13:51

한국농구연맹(KBL)이 개최하는 행사 중 이토록 잔인한 행사가 또 있을까.

신인 드래프트는 매년 프로 진출을 희망하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치러진다. 전력 보강, 취업 등 저마다의 사연이 어우러진 드래프트 현장은 늘 환호성이 끊이지 않는다. 지명된 선수는 수많은 환호 속에 꽃다발을 받고, 기념사진도 촬영한다.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는 무대가 바로 드래프트 현장이다.

하지만 모두가 웃으며 드래프트를 마칠 수는 없는 노릇. 드래프트는 평생 농구만 해왔던 ‘농구 바보’가 선수에 대한 희망을 잃는 무대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희비가 교차하는 행사가 드래프트라 할 수 있다.

지명된 선수들도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다. 지명 순위에 따라 선수들의 표정도 각양각색이다. 1라운드 지명 선수들이 최소 5년의 계약기간을 보장받는 것과 달리 2,3라운드에 지명된 선수들은 최소 2년, 길어야 3년의 계약기간을 제시받는다.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 또한 적게 받아 경기에 나설 기회도 많지 않다.

2라운드에 지명된 선수들은 프로 진출에 대한 기쁨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걱정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단상에 오르곤 했다. 2000년대 초반 드래프트 현장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2라운드에 지명되어도 함박웃음 속에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선수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2라운드에 선발됐음에도 신인상을 수상, 현재까지 꾸준히 활약하고 있는 이현호로 인해 2라운드 지명에 대한 선수들의 인식이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절망 끝에서 희망을 쏘아올린 이현호. 그가 있었기에 2라운드에 지명된 선수들은 희망을 갖고 데뷔를 준비할 수 있었고, 구단 관계자들 역시 그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기회를 제공하게 됐다.

은퇴 각오한 신인, 흙 속의 진주되다

이현호가 참가한 2003 신인 드래프트의 1순위는 정해져있었다. 연세대의 ‘어린 왕자’ 김동우는 장신임에도 슈팅 능력이 뛰어나 일찌감치 관계자들로부터 눈도장을 받았던 참가자. ‘누가 1순위로 지명되느냐’가 아닌 ‘어느 팀이 김동우를 영입하느냐’가 관심사였을 정도였다.

2라운드 후보는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잘해야 2라운드 상위 순위’로 전망되던 이현호 역시 마찬가지. 고려대의 골밑을 책임진 자원이었지만, 프로농구에서 스몰포워드 혹은 파워포워드로 뛰기엔 플레이 스타일이 애매했다. 이전까지 2라운드 출신 성공 사례가 많지 않았던 것도 이현호의 가치가 부각되지 않은 이유. 이현호의 지명 순위는 2라운드 8순위(서울 삼성)였다.

“2라운드에 지명된 선배 중 성공한 선수가 많지 않았다. 나 역시 프로팀에 입단한 것 외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지명 순위가 낮아 ‘금방 그만두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현호가 드래프트에서 호명된 후 단상에 오른 당시를 회상하며 남긴 말이다.

하지만 시즌을 준비하면서 이현호의 마음가짐도 조금씩 달라졌다. 몸을 사리지 않고 궂은일을 도맡는 그의 모습에 김동광 감독이 연습경기, 전지훈련 등에서 기대 이상의 역할을 주문한 것.

2003-2004시즌 초반부터 주축 식스맨으로 활약한 이현호는 서장훈이 부상을 당한 시즌 막판 자신의 가치를 부각시켰다. 신인다운 패기로 골밑에 힘을 보탰고, 심심치 않게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때 5연패에 빠져 5할 승률조차 장담하지 못했던 삼성은 이현호의 깜짝 활약 속에 두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생애 한 번밖에 받을 수 없다는 신인상도 이현호의 차지였다. 그는 신인상 투표에서 총 25표를 획득, 22표에 그친 김동우를 제쳤다. 드래프트 2라운드 출신 최초의 신인상 수상. ‘2라운드 지명 선수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은 그렇게 이현호를 통해 만들어졌다.

독배를 축배로 만든 사나이

2라운드 출신 최초의 신인상. 겉모습만 보면 남부러울 것 없는 데뷔였지만, 이현호에게는 남모를 고충도 많았다.

기록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평균 3.2득점 1.7리바운드는 신인상 수상자라고 하기엔 밋밋한 기록이었던 게 사실. 신인상 투표에서 기권이 18표나 나왔던 것이 당시 신인들에 대한 기자단의 평가를 대변한다.

이현호는 신인상 수상 후 한동안 침체기에 빠졌다. 2004-2005시즌부터 두 시즌 동안 평균 4분 6초 출전에 그쳤다. 한동안 그에게는 ‘최악의 신인상’이라는 혹평도 뒤따랐다.

“신인상을 받은 것이 후회될 정도였다. (서)장훈이 형, (이)규섭이 형이 있어 경기를 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신인상은 나에게 독배와도 같았다.”

하지만 이현호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안양 KT&G(현 KGC인삼공사)로 이적한 후 유도훈 감독을 만나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재탄생했다. 유도훈 감독은 힘과 기동력을 겸비한 이현호를 다방면에서 활용했다. 전공분야인 빅맨을 상대하는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 외국선수, 가드에 대한 수비까지 맡겼다. 슈팅 능력 역시 시즌을 거듭할수록 향상되는 모습이었다.

결국 이현호는 2003-2004시즌 시상식 현장에서 공언했던 각오를 달성했다. 신인상을 수상하며 “언젠가 식스맨상에도 도전해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던 이현호는 인천 전자랜드의 정규리그 준우승에 일조한 2010-2011시즌, 마침내 식스맨상을 차지했다. ‘최악의 신인상’이라 불리던 이현호가 신인상, 식스맨상을 수상한 KBL 최초의 선수로 환골탈태하는 순간이었다.

2라운드 지명자여, 희망을 가져라

이현호가 ‘2라운드 출신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후 그의 뒤를 잇는 ‘흙 속의 진주’도 우후죽순 탄생하고 있다.

2004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순위로 선발된 김현중(당시 대구 오리온스)은 현재 2억 5,000만원의 고액 연봉을 받는 올스타로 발돋움했고, 올 시즌 기량이 만개한 김동욱(고양 오리온스) 역시 2라운드 출신 선수다. 김동욱은 2005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4순위로 삼성에 지명됐다. 심지어 전자랜드의 핵심 식스맨으로 활약 중인 정병국은 3라운드 출신(2007 드래프트 3라운드 2순위)이다.

당장 스포트라이트는 받을 수 없겠지만 1라운드 선발이 성공을 보장해주는 것도, 2라운드 선발 선수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2012 신인 드래프트 현장에서도 환희와 절망이라는 두 가지 풍경이 그려질 것이다. 2라운드, 혹은 3라운드에 선발된 선수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한 1라운드 지명 선수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분명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행복은 지명 순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진다. 그리고 기회를 잡는 것은 오로지 본인의 노력 여하에 달렸다. 결국 최후에 웃는 자는 1라운드 출신이 아닌, 프로무대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는 선수다.

강자가 오래 가는 게 아니다. 오래 가는 자가 진정한 강자다.

‘2라운드 신화’ 이현호의 후배들을 위한 조언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결국 준비된 자가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준비한다면, 성공의 문도 열릴 것이다. 고참이 되니 ‘지명 순위는 낮았지만, 저 선수는 많은 경기에 투입될 것 같다’, ‘저 선수는 마음가짐이 되어있지 않다’라는 게 훤히 보인다. 감독님들의 느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프로선수가 되어서도 농구를 즐기는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길 바란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 사진 문복주 기자, KBL PHOTOS

제이앤제이미디어

주소
서울시 송파구 가락본동 49-4 3F
대표번호
02-511-5799
팩스
02-511-5502
contact
basket@jumpball.co.kr
Copyright 2001-2011 by J&J Medi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