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공유 페이스북공유
  • 글자크게
  • 글자작게
  • 인쇄하기
  • 스크랩하기
[조원규의 시원한 籠談] 우리는 농구인 가족
조원규()
기사작성일 : 2017-12-29 11:21

[점프볼=조원규 칼럼니스트] 이종현과 박지수. 두 선수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두 선수 모두 고등학생 신분으로 성인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이종현은 경복고 3학년 때 런던올림픽 최종예선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한국 남자 국가대표 역사상 다섯 번째로 고등학생 국가대표가 된 이 선수를, 대한민국 농구협회는 ‘2012 아디다스 올해의 선수’ 남자선수 부문에 선정했습니다.

 

그 해, 여자선수 부문에 선정된 선수는 당시 청솔중 3학년이던 박지수입니다. 다음 해에 박지수는 여자 농구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 기록(15세 7개월)과 함께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습니다. 두 선수는 2016년 신인 드래프트 1순위로 나란히 프로에 진출했고, 데뷔 시즌부터 팀의 주축 선수로 뛰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아버지가 농구선수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이종현의 아버지는 중앙대와 기아자동차에서 선수생활을 한 이준호씨입니다. 박지수의 아버지는 명지대와 삼성전자, 삼성 썬더스에서 선수 생활을 한 박상관 코치입니다. 박상관 코치는 모교인 명지대에서 오랜 시간 후배들을 지도했고, 박지수의 모교인 분당경영고에서 딸의 후배들을 지도했습니다. 사례를 찾기 쉽지 않은 독특한 인연입니다.

 

 

한때 두 선수의 기사에 이종현과 박지수를 결혼시켜야 한다는 댓글이 많았습니다. 두 선수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2세에 대한 농담 섞인 기대감의 표현이었죠. 물론 그 기대감에 근거는 없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이클 조던입니다. 두 아들이 농구를 했지만,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전혀 근거나 없지도 않습니다. 농구를 포함한 많은 스포츠 종목에서 특출한 2세가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축구의 레전드 차범근은 차두리를 낳았고, ‘바람의 아들’ 이종범은 ‘바람의 손자’ 이정후를 낳았습니다.

 

 

유전자의 힘
이종현 이전에 고등학생으로 성인 국가대표에 발탁된 선수는 네 명이 있습니다. 그 중에 두 명은 지금도 KBL에서 팀의 주축 선수로 뛰고 있습니다. KCC의 하승진과 오리온의 최진수입니다. 두 선수 모두 농구인 2세입니다. 하승진은 2008년 농구인 2세 최초로 드래프트 1순위의 영광을 누렸고, 2014년 이승현과 2017년 허훈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2016년 이종현까지 최근 4년간 세 명의 KBL 드래프트 1순위가 농구인 2세입니다. 허훈은 현 남자농구 국가대표 허재 감독의 아들입니다. 형 허웅과 함께 3부자 국가대표로 화제가 되기도 했죠.

 

2019년 FIBA 농구 월드컵 지역 예선에 출전하는 남자농구 국가대표 12명 중에 4명이 농구인 2세입니다. 2017년 FIBA U19 월드컵의 주축 선수 김진영(고려대 1학년)과 양재민(경복고 3학년)의 아버지는 김유택 전 중앙대 감독과 양원준 WKBL 사무총장입니다. 서정현은 서대성 동국대 감독의 조카로 유명합니다. 세계대회 8강의 놀라운 성적을 올린 2016년 U17 월드컵 대표팀에도 두 명의 농구인 2세가 있었습니다. 삼일상고 이현중과 휘문고 박민우(현 고려대)입니다. 이현중은 이 대회에서 평균 26분을 뛰며 11.7득점을 기록했습니다. 이정현에 이어 출전시간 대비 두 번째로 높은 득점 생산력이었고, 특히 3점슛은 41.5%의 성공률로 평균 2.4개를 성공했습니다.

 

태극마크를 달지 못해 화제가 된 선수들도 있습니다. 여준석(용산중 3학년)은 2016년 전국체전 결승에서 50득점 34리바운드라는 엄청난 기록과 함께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이후에도 출전한 모든 전국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 역대급 유망주입니다. 올해 삼일중에서 용산중으로 전학하며 16세 대표팀 선발에서 제외됐는데, 지난 10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여준석의 아버지는 부산동아고와 고려대에서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이현중의 U19 월드컵 대표팀 탈락도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이현중은 2m가까운 신장에 득점력이 탁월한 선수입니다. 슛 거리가 길고 플로터 등 다양한 마무리 기술을 가진 선수죠. 올해 삼일상고 4관왕의 주역이고, 시즌 첫 대회인 춘계연맹전에서는 2학년임에도 MVP로 선정됐습니다. 그런데 U19 월드컵 대표팀 명단에 이현중의 이름은 없었고, 대회 기간 내내 많은 팬들은 이 선수의 부재를 아쉬워했습니다. 이현중의 아버지는 삼일상고 이윤환 감독, 어머니는 여자농구의 레전드 성정아씨입니다.

 

 

나도 레전드가 될래요
이현중의 사례처럼, 레전드의 자녀들 중에 농구선수가 많습니다. 성정아와 함께, 1984년 LA올림픽 은메달의 주역이었던 김화순과 문경자도 농구인 가족입니다. 김화순 동주여고 감독의 딸은 2015년 드래프트 5순위로 지명된 신재영입니다. 문경자 전 보문중 감독은 양지영(신한은행)과 양인영(삼성생명) 등 두 딸이 프로에서 뛰고 있습니다. 조문주 U16 여자 대표팀 감독의 딸은 삼천포초등학교에서 농구를 배우고 있고, 유영주 전 KDB생명 코치의 두 아들 역시 엄마의 모교인 송림초교에서 기초를 닦고 있습니다.

 

남자농구는 앞서 언급한 허재 3부자와 김유택 부자가 있습니다. 허동택 트리오의 막내, 강동희 전 동부 감독의 아들 역시 호계중에서 농구를 하고 있습니다. 1997년 아시아선수권은 홈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을 제외하면 한국농구가 마지막으로 아시아 정상에 선 대회입니다. 당시 전희철과 함께 포스트를 지킨 정재근 전 연세대 감독의 아들은 경복고의 백코트 에이스 정호영입니다. 정호영은 아버지의 라이벌 대학인 고려대로 진학을 결정해 화제가 됐습니다.

 

농구선수 중에는 타 종목 레전드의 자녀들도 있습니다. 상무에서 KBL 복귀를 기다리고 있는 장민국은 잘 알려진 대로 배구인 장윤창씨의 아들입니다. 천하장사 이태현씨의 아들은 매산초등학교에서 농구선수의 꿈을 키우고 있고, 프로야구 초대 홀드왕 조웅천씨의 아들 역시 양정고에서 프로 진출의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현직 지도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고려대 재학 중인 유상준(3학년)은 유도훈 인천 전자랜드 감독의 아들이고, 배재고 김진모(3학년)와 용산중 김동현(3학년)은 안양 KGC인삼공사 김승기 감독의 아들입니다. 안덕수 KB스타즈 감독과 이효상 DB 코치의 아들은 각각 삼선중과 삼광초에서 재능을 검증받고 있습니다.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
타 종목에 비해 유난히 농구는 2세 운동선수가 많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2015년 동아일보 이승건 기자의 기사에, 이와 관련한 박건연 MBC 해설위원의 인터뷰가 있습니다. 박건연 위원은 “예전에는 농구 선수라는 직업이 별로 안정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프로가 정착하면서 만족하는 선수가 많아졌다. 종목 특성상 키가 커야 하기 때문에 농구인 2세들은 이런 면에서 유리한 데다 소질도 물려 받는다”라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운동능력의 유전적 요인에 대한 연구는 적지 않지만 농구에 특정해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유전적 요인을 무시할 수 없고, 유전적 특성을 신체능력으로 개발하는 것에 있어 선수 출신의 부모는 좋은 환경이 될 수 있습니다. 주변의 지인들은 기술적으로, 정신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고 그런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농구를 많이 접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환경적 요인입니다.

 

한편으로, 환경적 요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있습니다. 비계량 부문의 수상자 선정이나 각급 대표팀 선발에 관한 잡음, 특정 선수의 출전시간이나 역할, 상급 학교 진학에 관한 것들입니다. 농구의 선후배에서 지도자와 학부모의 관계로 변하면 서로 불편한 일들이 있을 수 있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다른 학부모들의 눈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 농구의 힘
일부 부정적 요소나 논란에도 불구하고, 농구인 2세가 많아지는 것은 한국 농구에 긍정적입니다. 이종현과 박지수의 사례처럼, 좋은 DNA와 운동하기 좋은 환경은 선수의 성장에 긍정적 요인입니다. 가족과 연관된 스토리는 마케팅의 훌륭한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나는 선수들 모두를 똑같이 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를 공정하게 대한다.” 미국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된 존 우든 감독의 말입니다. 좋은 DNA와 환경, 여기에 협회와 지도자의 공정함이 더해진다면 한국 농구는 이 선수들로 인해 새로운 활력을 충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본 기사는 점프볼 2017년 12월호에 게재된 내용을 일부 편집했습니다.

 

소개
점프볼 칼럼니스트 조원규는 ‘농구잡담’ 블로그를 운영하는 행사기획 전문가다. 2017년 12월호부터 ‘조원규의 시원한 籠談’을 통해 다양한 농구 이야기를 전할 계획이다.

 

#사진=점프볼 DB(문복주, 유용우 기자) 

<저작권자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