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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3세 정용기 대표 "농구는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통로
권부원
기사작성일 : 2017-08-30 13:50
[점프볼=권부원편집인] 일본에서 스포츠마케팅회사 윌(WILL)을 운영하는 정용기 대표는 자신을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농구를 통해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역할이 너무 좋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3세다. 쓰쿠바대학 스포츠마케팅 석사과정을 졸업한 그는 2006년 일본 B리그(일본남자프로농구연맹)에 입사해 3년간 근무하며 한국 관련 업무를 도맡았다. 2009년 3년간 일했던 직장 B리그를 그만두고 ‘윌(WILL)’을 설립했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잡지 점프볼 8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윌은 한국과 일본의 농구교류를 대행하는 일이 주 업무다. 한국의 프로, 대학, 고교팀이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오면 윌이 훈련 장소와 연습상대를 섭외하고, 숙식, 통역 같은 뒷바라지를 담당하고 있다. 정 대표는 그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지난해 회사 이름을 딴 3X3 농구팀 ‘윌’을 창단했다. KBL에서 뛰었던 이승준, 신윤하, 최고봉과 동국대 출신 남궁준수로 구성된 팀이다. 윌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세미프로 팀이다. 한국 대표팀으로 선발되어 지난 6월 프랑스 낭트에서 열린 FIBA 3X3농구 월드컵에 출전하기도 했다. 



정 대표는 윌의 구단주이자 후원자다. 때론 매니저가 되기도 한다. 3X3 농구팀은 엔트리가 12명인 5X5 농구와 달리 선수 4명인 미니 팀이다. 작은 팀이어도 그는 윌과 함께 할 때 꿈을 이룬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중학생 때 만화 「슬램덩크」에 매료된 한 소년이 농구에 푹 빠져 지내다가 실제 구단주가 된 현실을 맞이 했다고나 할까.   

정용기 대표와 만남은 한 인간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사실 재일교포가 은퇴한 한국선수들로 구성된 3X3 농구팀을 후원한다는 얘기를 처음 접하고 나서, 그 사람이 그냥 나이 지긋한 교포 독지가 쯤으로 생각했다. ‘윌’은 지난 5월 선발전을 거쳐 한국 대표팀이 됐다. 정 대표는 그 팀을 이끌고 프랑스 낭트 월드컵을 다녀왔다. 스태프도 없는 대표팀에서 그가 뒷바라지를 맡았다. 대한민국농구협회는 협회가 해야 할 일 가운데 상당부분을 그에게 맡긴 셈이었다. 

이 사람의 정체와 생각이 무엇인지 갈수록 궁금해졌다. 마침 7월 21일 경기도 하남 스타필드에서 정용기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한국 3X3 농구연맹이 발족식을 겸해 ‘더 비기닝 오브 코리아 3X3 대회’를 개최한 자리였다. 정 대표는 재일교포 선수 고상범을 데리고 참석했다.

그는 일본에서 부를 축적한 독지가가 아니었다. 1980년생, 아직 마흔 살이 되지 않았고, 돈을 잘 버는 사업가도 아니었다. 젊은 비즈니스맨이다. 또한 학창시절 농구선수를 했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작은 키의 소유자다. 농구를 시작한 중학생때 1m63, 지금은 1m67 이라고 했다. 질문을 던지자 하나둘 의문이 풀렸다.

재일교포로 자라 농구와 인연맺은게 행운 

Q. 어떻게 B리그에 입사했고, 별도로 독립하게 되었나.
대학시절 농구를 하면서도 스포츠마케팅에 관심을 가졌다. 나이키가 세계최고 회사로 성장하는 과정에 흥미를 갖고 더 공부하려고 쓰쿠바대학 석사과정에 들어갔다. 마침 내가 석사를 마칠 때 B리그가 출범했다. 사무국 직원으로 들어가 한국관련 국제업무를 했다. 한일 챔프전 업무를 봤고, 한국 팀이 전지훈련 올 때마다 관련 일을 돕다가 2009년 회사를 만들어서 독립하게 됐다.

Q. 그것이 지금의 윌(WILL) 인가.
맞다. 신념, 의지란 단어 좋아한다. 그래서 회사명을 WILL로 지었다. 재일교포로서 농구를 통해 한국과 일본에 공헌하겠다는 신념이 들어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Q. 의지가 대단해 보인다. 윌 설립할 때 설정한 목표는 얼마나 이뤘다고 생각하나. 
1년에 하나씩 새로운 일에 도전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맨 처음에 프로팀 전지훈련만 맡아했고, 그다음부터 고교, 대학 팀도 맡았다. 지금은 3X3 농구까지 하게 됐다. 매년 하나씩 새로운 일 시도하고 있다. 



Q. 그렇다면 회사도 많이 성장했을 것 같다. 수익이 있어야 농구팀도 후원할 것 아닌가. 
처음엔 1인 회사였다. 혼자서 모든 일을 했다. 지금도 직원 3명인 작은 회사다. 9월처럼 한국팀 전지훈련이 집중되는 시기에는 알바생을 더 채용한다. 초기와 비교하면 지금 매출이 많이 늘긴 늘었지만 아주 여유가 많아서 3X3 농구팀에 투자하는 것은 아니다. 3X3 농구에 대해 한국에서 아무도 관심 없을 때 시작한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Q. 정대표가 회사 운영하기도 바쁘고 힘들 텐데, 왜 3대3 농구팀을 만들어서 사서 고생하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건가. 
재일교포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가 축구다. 왜냐하면 정대세가 나오고, 안영학이 나왔다. 재일교포이면서도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고, 한국 K리그도 뛴다. 재일교포 사회에 축구는 자리잡았다. 어린 아이들도 축구선수 꿈을 가진다. 아주 큰 동기부여가 된다. 그런데 재일교포 가운데 프로농구선수는 없다. 농구가 재일교포 가운데 확실한 위치를 잡지 못하는 이유는 프로선수가 나오지 않아서다. 농구하면서 한국을 오가며 보람을 갖고, 그걸 누구와 공유하고 싶은 그런 후배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프로팀을 만들었다. 일본에서만 만족하는게 아니라, 한국, 북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재일교포는 한국, 북한에서도 주류가 되지 않는다. 재일교포가 주류가 될 수 있는 게 무얼까 고민하니, 시점상 3X3 농구더라. 내가 이끌고 나갈 수 있는 것이 3X3 농구라고 생각한다.

정 대표는 농구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3X3 농구를 ‘바로 이것’이라고 불렀다. 그는 조총련계 재일교포로서 일본사회에서 받아온 차별도 농구를 통해 극복해왔다. 그를 만나보니 타고난 운명을 긍정과 낙관으로 받아들여 삶의 의지로 바꾸는 기운이 느껴졌다.  

“저는 운 좋은 사람입니다, 재일교포로 태어났기때문에 이런 생각을 갖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제가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그냥 무난하게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재일교포로 살았으니까 일본에서 한국과 인연 맺고 살자 생각했지, 일본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갖지도 안했을 테니까요. 제가 농구와 만나지 않았으면 이런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업차 한국을 자주 방문하는 그는 요즘 “일본으로 귀화하면 일본에서 살기 편하지 않느냐”란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그때마다 그는 “내가 일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 국적을 가질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하곤 한다. 경상남도 진양이 고향인 그의 조부는 청년기에 일을 찾아 일본에 건너왔다. 부모세대를 거쳐 지금까지 귀화를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다고 했다.     

‘WILL’ 창단은 승부수, 회사 수익 대부분 투자

정용기는 일본내 조선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때 만화 「슬램덩크」를 보며 농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당시 키는 163cm밖에 되지 않았어도 농구부에 들어가 선수로 뛰었다. 

“당시 일본에 「슬램덩크」 열풍이 몰아쳤다. 나도 영향을 받았다. 초등학교 때는 노래를 좋아해서 장차 성악가가 되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러나 「슬램덩크」를 읽고 스포츠를 하는 남자에 대한 동경과 희망이 생겼다. 축구는 내 성향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농구를 시작했다. 중고교 시절, 대학까지 농구에 빠져 지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농구는 현재 정용기 대표의 삶과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특히 3X3 농구는 미래를 내다보고 던진 승부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회사에서 나온 이익 대부분을 ‘윌’을 후원하는데 쓰고 있다. 연간 매출은 많을 땐 5,000만 엔, 적게는 4,000만 엔 정도 된다.    

3X3 농구는 새로운 문화, 농구협회 무관심 안타까워 

정 대표는 지난해 3X3 농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둔 일본에 올림픽에 대한 정보가 많이 돌아다녔다. FIBA가 3X3의 올림픽 진입을 밀어붙여 조만간 올림픽에 채택될 것을 알고 팀 창단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윌은 지난해 5월 창단했다. 그는 처음부터 재일교포와 한국선수로 팀을 구성했다. “그래야 관심을 많이 끌 것으로 생각했다. 농구에 열정을 쏟던 후배들이 은퇴하는게 너무 안타까웠다. 농구에 대한 열정을 쏟아 부을 곳을 만들어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일본은 이미 상금이 걸린 3X3리그가 성행하고 있다. 또한 정 대표 개인의 열정과 관심에 견주어 봐도 한국내 3X3 농구에 대한 관심은 미미한 편이다. 특히 대한민국농구협회 행정과 지원은 아직까지 3X3농구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낭트 월드컵 대회를 겸험한 정 대표는 대한민국농구협회에도 쓴 소리를 보냈다. 그는 “농구협회가 정말 뜨거운 열정과 의지를 갖고 일하는 게 아니라, 그냥 업무로만 일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한국도 3X3 농구의 시장성은 충분하다. 그 시장을 긍정적으로 좋은 재료로 전환 시키려면 관계자들이 3X3에 대한 마인드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또 “FIBA가 3X3농구를 새로운 문화이자 사업모델로 낙점했다”고 전하며 “FIBA가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도 한국문화가 독특한 컨텐츠를 갖고 있기 때문인데 한국만 그것을 모르면 안 된다“고 직격했다.

# 사진_한필상 기자,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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