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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으로 돌아온 원진아, 나의 인생을 걸고 도전합니다
곽현(rocker@jumpball.co.kr)
기사작성일 : 2017-08-30 13:17
[점프볼=곽현 기자] 선수와 심판. 동업자 같으면서도 평행선처럼 어색한 관계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사이다. 심판은 선수들의 원활한 경기 진행을 돕는다. 바이얼레이션을 잡아내고 파울을 지적하는 그들이 없다면 경기가 어떨지 상상해보라. 그러나 항상 그림이 아름다운 건 아니다. 때로는 거친 항의도 불가피하며, 그럴 때면 테크니컬 파울이 주어져 원성을 사기도 한다. 이처럼 선수 입장에서 심판은 늘 반갑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최근 심판복을 입고 코트로 돌아온 원진아(33)는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여자프로농구 선수로서는 드물게 심판이 되어 돌아와 눈길을 끌고 있다. 과연 자신이 활약했던 무대에 ‘심판’이 되어 돌아온 계기는 무엇일까. 

# 본 기사는 농구전문잡지 점프볼 8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제가 심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원진아 심판은 현역 시절 좋은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골밑에서 궂은일을 도맡았던 선수다. 2007년 겨울리그에 데뷔해 2013년까지 뛰었다. 선수 은퇴 후에도 원진아는 계속해서 농구와 인연을 이어갔다. 대한민국농구협회 기록원을 거쳐 심판까지 맡았다. 그 도전은 프로농구심판까지 이어졌다. 

Q. WKBL 심판으로 돌아온 소감이 어떤가요?
열심히 해야죠. 다른 선배들보다 경력이 짧으니까 더 노력 해야 할 것 같아요. 선수 출신이다 보니 이슈도 되고 많이 관심을 가져주시는데, 제가 성장하지 못 하면 절 믿어주신 분들에게 죄송할 것 같아요. 점점 좋아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Q. 언제부터 심판 준비를 했나요?
농구협회에서 경기부를 하다가 룰에 대해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심판 교실에 들어가서 교육을 받으면서 심판이라는 직업에 매력이 느껴졌어요. 자격증을 따고 작년부터 심판으로 활동했어요. 그러다 좀 더 큰 무대에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선수들에게도 은퇴 후 다른 길이 있다는 것도 알리고 싶었어요. 

Q. 심판 데뷔전은 어땠나요?
중고등학교 경기에 들어갔는데, 그냥 왔다갔다만 하다가 끝난 듯한 기분이었어요. 긴장을 정말 많이 했어요. 신입이다 보니 전부 다 알아요. 코치님들께서 더 어필하는 부분도 있었고요.

Q. 선수 시절에는 심판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았을 것 같은데요.
선수 때는 안 좋은 감정도 좀 있었죠. 그 땐 잘 몰랐으니까요. 다 이유가 있던 건데…. 어떻게 보면 어리석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대부분의 선수들이 심판에 대해 좋은 이미지보다는 안 좋은 이미지가 더 많지 않을까 싶어요.



Q. 그 때는 자신이 심판을 할 줄은 몰랐겠죠?
그렇죠. 전혀 생각이 없었죠. 주위 분들도 “원진아가 심판을 해?”라고 하셨대요. 대부분 선수들이 심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할 거예요. 나름대로 파란만장한 선수 시절을 보냈는데, 심판을 할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Q. 아무래도 본인이 뛰던 무대이기에 부담도 있을 텐데요.
아는 선수들도 많고 감독님들도 계시니까요. 사적인 감정 없이 임하려고 해요. 요즘 연습경기를 다니고 있어요. 어떻게 봐주실지 모르겠지만, 좀 어색한 건 있어요. 빨리 적응해야죠. 냉정해질 필요도 있고요. 아직 그런 부분에 있어선 수련이 덜 된 것 같아요.

Q. 심판 테스트는 어렵지 않았나요?
긴장을 많이 했어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많아서 자신 있게 임하려고 했죠. 제가 몸이 왜소하다 보니까 수신호도 좀 더 힘 있게 하려고 했죠.

그분(?)과의 피할 수 없는 만남
심판은 외로운 직업이다. 제 아무리 은사이고 동문이라 해도 사적인 자리에서도 만남을 조심해야 하는 자리다. 코트에서도 마찬가지. 최근 원진아도 그 외로움(?)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원진아를 유독 긴장시키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과연 누구일까.

Q. 중학교 때 일본으로 갔잖아요. 어떻게 가게 된 건가요?
중학교 때 춘천에서 서울로 전학을 가려고 했는데, 학교에서 동의서를 안 써주셨어요. 싸움이 오래 갔죠.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할 수가 없어서 결국 일본에 가게 됐어요. 



Q. 선수 생활을 돌이켜본다면?
요즘은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에 오는 선수도 있고, 외국에서 오는 선수도 있는데, 예전에는 저 같은 케이스가 거의 없었어요. 저는 일본에서 대학을 마치고 왔어요. 나이가 많은 상태로 팀에 들어오다 보니 적응하기 어려웠던 부분도 있었고, 한국과 일본의 농구스타일도 좀 달랐죠. 적응하는데 몇 년이 걸렸어요. 감독님들께서 비시즌 유망주로 늘 제 이름을 거론해주셨는데, 막상 시즌에 들어서면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 했어요. 그러면서 지쳤던 것 같아요. 은퇴하기엔 좀 이른 나이였는데…. 모든 식스맨들과 후보 선수들이 겪는 어려움일 것 같아요.

Q. 은퇴 후에는 어떻게 지냈나요?
농구 협회에서 경기부도 했었고, WKBL 2군 경기부에서도 일했어요. 유소년 아이들이 일본에 갈 때 통역도 하고, 2014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대표팀 매니저도 맡았었죠.

Q. 심판 준비를 하면서 농구를 보는 시선도 좀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좀 다른 시선으로 경기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엔 ‘어떻게 하면 저런 플레이가 될까?’ ‘어떻게 하면 힘 있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어느 쪽으로 가야 잘 보일까?’ ‘어느 쪽에 있어야 선수들 플라핑에 안 속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즐긴다기보다는 냉정하고 정확하게 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Q. 사실 심판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잖아요?
선수들은 인생을 걸고 하는데, 심판이 잘못 봐서 졌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말 듣기가 싫어요. 심판들도 직업이에요. 심판들도 선수, 지도자들처럼 자기 인생을 걸고 하고 있어요.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런 시선으로 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Q. 현재 WKBL에서 유일한 여자심판인데요. 어려운 점은 없나요?
어렵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성별은 여자지만, 같은 심판이라고 생각해요. 같이 잘 어울리려고 하고, 허물없이 지내려고 하고 있어요. 

Q. 심판이 됐을 때 동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왜 심판 하려고 해? 어려운 거 하지마”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심판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가 많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전 코트에서 말 걸지 말라고 하죠(웃음).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Q. 아무래도 오랫동안 뛰었던 KDB생명 경기에서 심판을 보면 흥미로울 것 같아요.
선수들과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김영주)감독님께서 화를 내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들어요(웃음). 연습경기에 갔는데, 감독님께서 “진안이” 부르시면 꼭 저를 부르는 것 같았어요. 예전에 감독님께 하도 혼나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자꾸 부딪치다보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이번 시즌 각오 부탁드립니다.
무사히 치렀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선수 출신이라 이슈도 되는데, 시즌에 들어서는 아무 얘기도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심판은 아무 말도 안 나오는 게 좋은 거잖아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서 기량이 좋아졌다는 말도 듣고 싶어요.

원진아 심판은…
1984년 8월 23일생. 원진아 심판은 선일여중에서 농구를 했다. 중학교 시절 이중등록 파문에 휘말리면서 어쩔 수 없이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일본 체육대학에서 농구를 하던 중 2006년 우리은행에 스카우트를 되면서 한국에서 다시 농구를 하게 됐다. 2008년에 KDB생명으로 이적했고, 식스맨으로 뛰며 골밑에서 활약했다. 2013년 현역 은퇴 후에는 대한민국농구협회 경기원, 심판을 거쳐 2017년 WKBL 신임심판으로 선발됐다.

# 사진_유용우,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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