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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쓰는이력서] 성균관대 김남건, 그가 품은 두 가지 꿈
강현지(kkang@jumpball.co.kr)
기사작성일 : 2017-08-14 13:42
[점프볼=강현지 기자] 2017년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하는 '예비 프로'의 취업 이력서. 아홉 번째 주인공은 성균관대학교 주장, 김남건(22, 186cm)이다. 팀은 약체로 분류되어 왔지만, 김남건은 대신 많은 출전 시간을 얻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 김남건이 어느덧 취업 준비생이 되어 프로 구단의 지명을 기다리고 있다. 취미 생활로 잡게 된 농구공이 그의 꿈이자 직업이 되기까지 어떤 이야기가 있었을까.
 


# 성장과정
김남건은 어릴 때부터 공놀이를 좋아했다. 농구보다는 축구를 좋아했지만, ‘키 좀 컸으면’하는 부모님의 바람에 농구를 하게 됐다. 엘리트 코스가 아닌 취미 생활로 말이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김남건 팀'을 꾸려 길거리 농구를 하다가 엘리트 농구를 시작하게 된 친구가 부러워 부모님께 어렵게 입을 뗐다. “농구 선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이다.
 
김남건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학교 2학년 때 청주 사대부중에서 주성중으로 전학을 갔다. “운동을 시작하면 포기는 안 된다”라는 아버지의 승낙을 받고서 말이다. 레이업 , 1대1 등 입단 테스트를 거쳐 농구 기술들을 배워 보고 싶어 들어갔지만, 그의 앞에 놓인 건 줄넘기와 같은 체력 운동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줄넘기를 하고, 운동장 트랙을 달리고 난 뒤에야 선수들과 훈련을 함께 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터라 부지런히 배워야 했다. 장점이 된 3점슛은 그때 만난 윤명수 코치 덕분에 완성됐다. 농구를 늦게 시작한 탓에 청주 신흥고로 진학한 후에도 출전 시간을 많이 부여받지 못했지만, 2학년 때부턴 주축으로 뛰며 에이스로 거듭난다. 신흥고에서 윤명수 코치를 다시 만난 덕분이다. (김남건을 청주 신흥고로 데려온 건 오임택 코치다. 하지만 오 코치는 김남건이 1학년이었을 당시 코치직을 그만뒀고, 후임으로 윤명수 코치가 부임했다.)
 
주전 자리를 꿰찬 고2, 김남건은 훨훨 날았다. 김남건이 농구 인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뽑은 것도 이때. 바로 제42회 추계연맹전이다. 2학년이었던 김남건은 양정고와의 경기에서 17득점 8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올리며 준결승에 오르는데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하지만 돌풍은 잠시, 4강에서 신흥고는 강상재(전자랜드)가 있었던 홍대부고에게 61-81로 대패했다.
 
“처음으로 4강에 진출해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때 경기 뛴 선수들이 6명밖에 없었거든요. 약팀으로 평가됐는데, 3위를 거둬 기분이 정말 좋았죠. 원래는 예선전만 통과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그 이상의 결과를 냈죠.”
 
신흥고 에이스로 거듭난 김남건은 성균관대로 진학한다. 윤명주 코치에 이어 그의 농구 인생을 바꿔줄 줄 은사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현재 성균관대를 이끄는 김상준 감독이다. “(공격에서) 내 준 만큼 넣으면 되지”라는 김남건의 공격 농구에 수비 스텝부터 하나하나 알려줬다.
 


“사실 새 감독님이 오신다고 하셨을 때 얼마나 대단한 분이신지 몰랐어요. 검색해 보니깐 중앙대 52연승이라는 업적은 남기신 분이더라고요”라고 웃은 김남건은 김상준 감독의 눈높이 교육에 성장해 가기 시작했다.
 
“정말 감독님이 섬세하세요. 스크린 과정에서도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멈추고 하나하나 알려주세요. 틀린 것이 있으면 잡아주시고요. 훈련도 실전처럼 이에요. 감독님이 훈련이고, 경기 때고 하시는 말씀인 ‘열심히, 잘하자’가 제 좌우명이 됐죠(웃음). 알아듣기 쉽게 정말 잘 설명해 주세요.”

※ 김남건의 대학리그 정규리그 성적
2017시즌 15.07득점 3.93리바운드 1.8어시스트
2016시즌 8.3득점 3.3리바운드 0.7어시스트
2015시즌 6.6득점 3.3리바운드 0.3어시스트
2014시즌 0득점 0리바운드 0.5어시스트
 


# 수상경력
- 2017년 72회 종별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상
 
올 시즌 대학리그에서 성균관대는 돌풍의 주역이 됐다. 3승에 그쳤던 지난 시즌과 달리 일찌감치 이 기록을 갈아치웠고, 대학리그가 출범했던 2010년 이후 처음으로 가장 높은 순위인 5위(9승 7패)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비결은 압박 수비. 그러면서 골밑에 득점이 편중된 것이 아닌 김남건, 양준우, 이재우 등도 내·외곽에서 힘을 보탠 것이 컸다. 누구보다도 돋보였던 건 김남건. 올 시즌 목표로 잡은 경기당 3점슛 4개, 플레이오프 진출로 잡은 개인적인 목표도 달성했다.  
 
“올 시즌 주장이 돼서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라고 말한 그는 “저학년 때는 소심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4학년이 되고 주장을 맡으면서 책임감이 생겼어요. 제가 안 하면 안 될 것 같았고, 무엇보다 제가 잘하는 것보다 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조용한 스타일이었고, 토킹 같은 것도 잘 안 했는데, 많이 바뀌었죠”라며 달라진 점을 말했다.
 
정규리그를 마친 성균관대는 MBC배에서도 그 기세를 이어가려 했지만, 주전 선수들의 컨디션 난조로 잠시 주춤했다. 고려대, 건국대, 경희대와의 경기에서 뼈아픈 3패를 안은 성균관대는 다시 분위기를 추스르고 종별선수권에 나선다.
 
절치부심의 마음으로 출발한 상주. 제72회 전국종별농구선수권대회에서 성균관대 연장 접전 끝에 준결승전에서 단국대를 잡고, 결승전에서 동국대를 넘어 7년 만에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결승전에서 15득점 6리바운드로 활약한 김남건은 최우수선수상까지 받으며 기쁨을 두 배로 만끽한다.
 
“MBC배에서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어요. 부상이 있어서 한 달 정도 쉬다가 대회에 참가했는데, 아무것도 안 됐죠. 그래서 종별선수권 대회를 앞두고 프로팀이랑 연습 경기를 하면서 슛감 찾으려고 계속 던졌어요. 어느 날은 30개 정도 던져서 5~6개가 들어간 날도 있었죠. 그 덕분에 (종별선수권 대회에서) 어느 정도 들어갔죠.”
 
김남건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사실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어요. 제가 에이스처럼 활약해서 받은 상이 아닌 것 같거든요. 이제 플레이오프를 남겨두고 있는데 남은 경기에서 잘해서 좋은 성적을 남기고 졸업하고 싶어요. 그래야 후배들도 내년에 기를 더 펼 수 있을 것 같아요.”



# 입사 후 포부
오는 10월, 신인선수 드래프트를 앞둔 그의 목표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과 다른 하나는 프로 진출. 다른 선수들에게는 당연한 과정일 수 있지만, 농구선수로서 구력이 짧은 그로서는 간절한 꿈이기도 하다.
 
“어느 팀에 가든 분위기 궂은일에 최선을 다하고, 슛에서도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분위기 메이커가 되고 싶다”는 김남건은 단점은 지우고, 장점을 강점으로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노력에 한창이다.
 
슈팅가드인 그의 장점은 정확한 한 방. 하지만 이 부분도 움직이면서 던지면 확률이 떨어져 계속 연습해 가고 있는 것 중 하나. “야간 개인훈련 시간에 코치님과 실전처럼 연습하고 있어요. 프로 형들이랑 연습 경기를 하는데, 제자리에서 던지면 절대 찬스가 안 나잖아요. ‘살아남으려면 움직이면서 연습 해야겠구나’라고 느꼈죠.”
 
롤 모델은 이정현(KCC)으로 꼽았다. “작년에 KGC인삼공사랑 연습 경기를 했었는데, 이정현 선수와 매치해 본 적이 있어요. 와, 정말 잘하시더라고요(웃음). 기본기가 탄탄하시다 보니 화려한 것보다 단순하게 잘하시더라고요. 저도 따라 해 보려고 하고 있죠.”
 
단점은 드리블도 이정현, 조성민 등 동 포지션 선배들의 영상을 챙겨보며 개인 훈련 시간에 연습한다는 김남건의 최종 목표는 태극마크. 최근 이집트에서 U19 대표팀에서 뛰고 온 양준우(1학년)를 보며 부러웠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욕심은 있지만, 기회를 아직 못 잡았죠. (양)준우가 KOREA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게 멋있고, 부러웠기도 했었어요. 선수라면 태극마크를 한 번쯤은 꼭 달아보는 게 목표잖아요. 저도 한 번 달아보는 게 소원이에요.”
 
그와 함께 농구를 시작한 친구들, 그리고 신흥고를 4강까지 올려놨던 그때 그 선수들은 이제 없다. 김남건만이 남아 프로 무대에 도전장을 내미는 가운데 그는 끝으로 부모님 이야기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농구공을 놓으면서 저도 많이 흔들렸었어요. 부모님이 경기장에 오셔서 조언해주신 날이 많았는데, 사실 칭찬보다는 쓴소리가 많았죠. 항상 전화가 왔었는데, 어느 날 한동안 전화가 안 오시더라고요. 몸이 안 좋으셨던 거죠. 지금은 괜찮으셔서 다시 경기 끝나면 전화가 오시는데(웃음), 절 위해 뒷바라지하신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꼭 프로 데뷔하는 꿈, 꼭 이루고 싶습니다.”

# 사진_점프볼 DB(한필상,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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