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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는 ‘원 클럽 맨’ 이시준
강현지(kkang@jumpball.co.kr)
기사작성일 : 2017-08-08 12:54
[점프볼=강현지 기자] 악바리, 근성, 부상투혼… 프로선수 이시준(34, 180cm)하면 연상되는 단어들이었다. 안면 보호대를 하고라도 경기에 나서고, 얼굴이 피투성이가 됐지만 팀이 연패를 끊는 모습을 직접 보겠다며 끝까지 코트에 남기도 했다. 그렇게 이시준은 오롯이 9시즌을 삼성에서만 보냈다. 그래서일까. 2016-2017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발표하자 팬들은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화려한 플레이를 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기록을 남긴 것은 아니지만 ‘없어서는 안 될’ 꾸준한 선수로서 뛰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 본 기사는 점프볼 7월호에 게재되었던 내용입니다. 

은퇴 발표 이틀 후. 그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말을 아끼고 싶었겠지’, ‘아직은 심경을 밝히고 싶지 않겠지…’라고 생각하며 이시준에게 문자를 남겼다. ‘인터뷰 요청 드리려고요!’, ‘편할 때 연락해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라고 2통의 문자메시지를 남긴 바로 다음 날. 이시준에게서 전화가 왔다. 생각보다 목소리가 밝았다.

“바람도 쐬고, 좀 쉬었어요. 아유~ 전화를 일부러 안 받은 게 아니라 폰을 안 가지고 갔거든요…(웃음).” 근황 이야기로 시작한 인터뷰. 사실 2016-2017시즌에 앞서 이시준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이시준은 “힘든 한 시즌을 보냈다”며 박재현, 임동섭과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머리를 식히고 왔다고 말했다. 여행으로 재충전한 이시준은 누구보다 삼성이 ‘명가’의 위상을 되찾기를 바랐다. 그의 8번째 시즌이었던 2015-2016시즌 삼성은 턱걸이로 플레이오프에 올랐지만 6강 진출에 만족해야 했다. 



‘도약’을 다짐한 만큼 각오도 남달랐다. 부상 없이 착실히 준비했고 덕분에 몸상태도 좋았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도 기회는 많이 돌아가지 않았다. 베테랑 김태술과 신인 천기범이 가세하면서 뛸 기회도 줄었다. 출전시간도 10분 안쪽으로 떨어졌다. 

자유계약선수 협상 테이블에 앉은 그때 깨달았다. 이제 은퇴할 때가 왔다는 것을. 

“프로는 실력으로 보여주는 곳인데…. 사실 그동안 몸이 안 좋냐는 질문을 많아 받았어요. 전혀 아픈 곳이 없었는데, 실력이 부족해서 그랬죠. 다른 문제가 아니었어요.” 

주변의 권유로 타 구단 이적도 생각해봤지만 러브콜을 보내온 구단은 없었다. 그는 “예상했던 결과”라며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였다. “구단에서 재계약을 안 하겠다는 입장을 전했을 때 저도 '(선수 생활을) 그만하겠다'고 말씀 드렸어요. FA를 나가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죠. 제가 보기에는 나간다고해서 다른 길이 보인다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제가 삼성에 오래 있어서 다른 유니폼을 입는 건 상상도 안됐거든요. 그래서 은퇴 의사를 전달했죠.”



‘선수로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시즌은 언제였나’라고 묻자 그는 2007-2008시즌을 떠올렸다. 3위(32승 22패)로 정규리그를 마친 삼성은 6강 플레이오프에서 LG를 만나 2전 전승으로 시리즈를 따냈다. 4강에 올라서는 KCC에게도 3승 무패로 이겼다. 특히 LG와의 2차전에서는 36분 36초간 3점슛 4개를 포함 23득점 2어시스트로 승리(96-90)를 주도했다.

“당시 수훈선수 상을 받았어요. 그때 경기가 기억에 남아요. 2013년 11월에 발목 탈골 부상을 당했었어요. 그때 다친 게 후회가 돼요. 많은 사람들이 제가 부상을 많이 당하고, 부상을 달고 있었다고 기억하시는데, 그때 다친 거 말고는 크게 다친 적이 없어요.” 



2013년 11월 24일이었다. 이시준은 KGC인삼공사와의 경기 중 발목 부상을 당해 들 것에 시려 나갔다. 시즌아웃이 결정된 경기였다. “부상 트라우마가 생각보다 오래갔어요. 크게 부상을 당해 본 적이 없어서 겁 없이 뛰어 다니고 했었는데, 머릿속에 트라우마로 남았나보더라고요. 심리 치료도 받고,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그렇게 9번째 시즌을 마치고 숙소 짐을 싸기 위해 삼성트레이닝센터(STC)로 찾았다. 

그때 그는 수 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STC에 입주한 이후 쭉 그 방만 썼거든요. 짐을 싸다가 침대를 바라보는데 수많은 생각이 나더라고요. 기분 좋게 누워있었던 적도 있었고, 아파서 누워 있거나 성적 안 좋아서 뒤척인 날도 있었죠. 담담하게 잘 있었지만 짐을 싸서 나올 때 힘들었어요.”

이시준은 그간 자신을 응원해 주고, 격려해준 삼성 농구단과 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삼성은 너무 고맙고, 감사한 구단이에요. 제가 스타플레이어도 아니고, 열심히 하는 걸로 버텼는데, 많은 걸 베풀어 주시고 오래 뛸 수 있도록 해주셨거든요. 매 경기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했어요. 하지만 챔피언결정전이 제 마지막 경기인 줄 알았더라면 좀 더 기억에 남길만한 뭔가를 하고 끝냈을 텐데…. 아쉬워요. 삼성에 있으면서 많지는 않았지만, 저를 꾸준히 응원해주시는 팬들이 있었거든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마무리 하게 됐는데 그게 가장 마음에 걸려요. 잘하는 선수도 아니었는데, 응원과 격려를 많이 해주셨거든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보답하려고요. 개인적으로 라도요.”

은퇴발표 후 이시준은 제주도로 향했다. 동생이 있는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주 2회, 스포츠클럽 학생들을 대상으로 농구를 가르칠 계획이다. “아내와 조금 쉬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기로 했어요. 동생이 제주도에 있거든요. 서귀포에 있는 대신중학교에서 스포츠클럽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6월 둘째 주부터 시작할 것 같아요. 쉬는 것도 좋지만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게 농구잖아요. 사실 육지에는 프로팀이 많지만 제주도는 그렇지 않아요.” 일주일에 4시간에서 6시간, 그에게 곧 ‘힐링’이 될 시간이다.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농구를 즐기는 아이들을 보면, 제가 한창 농구가 좋아서 할 때 느낌을 받지 않을까요.”

새로운 출발을 위해 첫 걸음을 내딛은 이시준. 어느 곳에서든 ‘이시준’다운 그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늘 열정적이고 꾸준하던 그 모습 말이다.

EPILOGUE | 이제는 이시준 선생님
인터뷰를 하고 며칠이 지났다. 제주도에 간 이시준과 연락이 다시 닿았다. 두 번째 수업을 막 마쳤다는 그는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적다보니 힘들기도 하지만 재밌다. 주위에서 ‘중학생들은 말을 잘 안 듣는다’고 하던데, 농구를 좋아하는 학생들이어서 그런지 날 잘 따라와 주고, 가르쳐주면 배우려는 자세가 좋다”고 말했다.
농구를 배우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시준은 스트레칭부터 농구의 기본 동작 하나하나를 가르치고 있다. ‘선수 이시준’을 기억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학교가 서귀포 혁신도시 쪽인데, 제주에서 태어난 학생들 말고도 육지에서 온 학생들도 꽤 있더라고요. ‘서울에 살 때 선생님 경기 봤어요!’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었어요. 신기했죠. 하하.” 

선수가 아닌 선생님으로 인생 2막을 시작한 이시준. 그는 당분간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당분간 ‘농구 선생님’으로 지낼 계획이다.

#사진=점프볼 DB,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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