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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Are You?] 양정고 코치 황진원 "전화위복이 된 7번의 트레이드"
곽현(rocker@jumpball.co.kr)
기사작성일 : 2017-06-19 13:29

[점프볼=곽현 기자] 이번「How Are You」 주인공은 현역 시절, 성실한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황진원(39)이다. 황진원의 프로시절 소속팀을 소개하기는 굉장히 애매(?)하다. 왜냐하면 그가 있던 소속팀이 무려 6팀이나 되기 때문이다. 그는 선수 시절 동안 무려 7차례의 트레이드를 경험했다. NBA에서는 이처럼 여러 팀을 떠도는 선수를 ‘저니맨’이라 부른다. 그는 “2년에 한 번 꼴로 팀을 옮겼다”고 회상했다. 선수로서는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그만큼 그를 필요로 했던 팀이 많았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 나이로 서른일곱 살까지 선수생활을 할 만큼 몸 관리도 잘 했던 선수였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잦은 트레이드 덕에 늘 새로이 정신무장을 하고 보다 열심히 뛰려 노력했다고 한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현역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기러기 아빠, 농구에 올인

2014년 삼성에서 은퇴한 황진원은 지난해 9월부터 양정고등학교 코치를 맡고 있다. 이미 2번이나 8강에 오를 정도로 양정고의 성적은 준수한 편이다. 은퇴 후 지도자 경력을 준비해왔다는 그는 코치 생활에 대해 ‘재미있지만 스트레스도 있다’고 표현했다.

 

“재미있는 일이다. 스트레스도 받긴 하지만, 그것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8강에 2번 올랐는데, 8강에 진출하는 게 중요하다. 대학에서 원서를 넣을 때, 8강 진출 기록이 없으면 넣지 못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학교의 관심과 지원도 나쁘지 않은 편. 황 코치를 더 힘나게 하는 부분이다. “학교에서도 잘 해주신다. 내가 양정고 출신은 아니지만, 선입견도 없다. 교장선생님이 워낙 농구를 좋아하신다. 인터넷으로 중계를 다 보실 정도다.”

 

황 코치를 힘내게 하는 부분은 또 있다. 바로 가족이다. 그는 현재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다. 아내와 두 딸은 미국에 가 있고, 홀로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혼자 남은 만큼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자신의 선택에 모든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선수 때는 단체생활을 하다 보니 잘못 느꼈는데, 지금은 집에 가면 혼자다보니 외로움도 느낀다.” 황진원의 말이다.

 

“아내가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 선수 시절에 가족이 아예 이민을 갔다. 아이 교육시키기에 미국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올 해 둘째를 낳았는데 같이 있어주지 못 했다. 그런 부분에서 아내에게 미안하다. 아내 아는 분이 미국에서 크게 사업을 하신다. 일자리를 준다고 오라고 했는데, 고사하고 한국에 남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코치로서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코치가 된 뒤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다. 결코 쉽지만은 않은 직업이라는 것이다. “지도자는 나만 열심히 가르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더라. 선수들이 잘 따라오게 만들어야 한다. 모든 지도자 분들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아이들의 성향을 다 파악해야 한다.”
 

트레이드, 나중엔 감이 와…
선수 시절 황진원은 유독 트레이드를 자주 경험했던 선수였다. 2001년 삼성에 드래프트된 후 첫 시즌을 치르기도 전에 LG로 트레이드 된 그는 선수 시절 총 7차례의 트레이드를 경험했다. 그래서 그의 커리어를 말할 때는 트레이드라는 네 글자가 빠지지 않는다. “사실 나한테는 트레이드가 전화위복이 됐다. 첫 이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삼성에 지명이 됐는데, 그 때는 서머리그가 있었다. 서머리그가 끝나고 버스를 타고 고향에 가고 있는데 전화를 받았다. 그게 첫 트레이드였다. KTF에서는 준우승을 했는데, 이후 팀에서 우승을 노린다면서 (양)희승이 형과 트레이드했다.

 

처음엔 좀 그랬는데, 나중에는 트레이드 소식을 들어도 ‘그러려니’ 했다. 가방 하나 들고 왔다 갔다 했다. 이 팀도 내 팀, 저 팀도 내 팀이란 생각이 들더라(웃음). 숙소에 짐도 많이 없었다.”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트레이드 당시에는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든 팀원들과 이별을 해야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KT&G에서 동부로 갈 때는 이상범 감독님이 의견을 물어보기도 하셨다. 시즌이 끝나면 FA(자유계약선수)가 되는 날 잡을 수 없는데, 동부에선 날 원한다고, 어떻게 할지 물어보셨다. 프로는 냉정하다. 돈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동부로 이적한 2011-2012시즌에는 정규리그에서 44승 10패를 거두며 정규리그 최다승 기록을 세웠다. 그는 주전 슈팅가드로 뛰며 팀의 백코트를 책임졌다. “준우승을 하고, 정규리그 기록도 다 세웠다. 그 때 ‘동부산성’이란 말이 나왔었는데, 그런 팀의 일원이라는 게 좋았다. 근데 다음 시즌 혼혈선수들이 FA시장에 나오게 되자 또 트레이드 대상자가 됐다. 그리고 마지막 팀인 삼성으로 이적하게 됐다.”  

 

이렇다 보니 언제부턴가는 트레이드에 대한 ‘감’이 오게 됐다고도 전했다. “처음엔 섭섭했는데, 몇 번 하다 보니 모든 일이 그렇더라. 처음이 어렵지 나중엔 적응이 된다. 이쯤 되면 트레이드가 되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팀마다 트레이드 시기가 되면 분위기가 있고 소문도 돈다. 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트레이드가 좋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처음에 가면 열심히 하지 않나. 그리고 감독님들도 트레이드된 선수는 기회를 주려고 하신다. 첫 시즌엔 성적이 좋아지다가 2번째 시즌에는 좀 하향세를 보이고, 그러다 트레이드가 됐다.” 트레이드를 자주 겪으면서 일어난 고충도 있었다.

 

“시즌 중에 트레이드가 되면 빨리 팀원들과 친해져야 하고, 팀 분위기에 녹아들어야 한다. 감독님 성향도 파악해야 한다. 난 항상 그런 걸 겪었다. 그래도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다. 난 버려진 게 아니라 스카우트 되서 가는 거라고. 결국 프로는 내가 몸으로 보여줘야 하니까. 아이 돌잔치를 했는데, 사람들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왔다. 많은 팀을 전전하다보니 아는 사람이 많아진 거다. 축의금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남더라(웃음).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 팀이라고 생각되는 팀이 없다. 2년 주기로 팀을 옮기다보니, 이 팀이 내 팀 같고, 저 팀도 내 팀 같고…. 그런 부분이 아쉽다.”

“무조건 뛰어” 기억에 남는 KT&G 시절

그렇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시절은 언제였을까. “KT&G 시절이 힘들기도 했지만 좋았었다. 유도훈 감독님이 계실 때인데, 농구가 참 재밌었다. ㈜희정이 형, (이)현호, (양)희종이, (김)일두, (마퀸)챈들러 등이 있었는데, 희정이 형이 공만 잡으면 ‘무조건 뛰어’였다. 지금도 농구를 가르칠 때 그 때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우리 팀에 장신자가 없기 때문에 당시 했던 농구가 맞을 수밖에 없다. 그런 농구를 하려면 팀원들이 볼 재간이 좀 있어야 한다. 역할 분담도 잘 돼야 한다. 프로는 하나만 잘 하면 살아남지 않나. 대신 아마추어는 그렇지 않다.”

 

가장 기억에 남는 지도자, 그리고 동료들도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코리아텐더 때 이상윤 감독님이 선수들을 참 편하게 대해주셨다. 그리고 지금 좋아하는 농구를 접하게 해준 유도훈 감독님, 이상범 감독님과 농구를 할 때도 즐거웠다. 동부 전성기를 함께 한 강동희 감독님도 선수들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감독님이셨다. 동부 때도 우승은 못 했지만, 준우승을 2번 하면서 재밌게 농구를 했다. (김)주성이와 (박)지현이가 1년 후배인데 생각 이상으로 잘 따라줬다. 최고참으로 얘기했을 때 군말 없이 잘 들어줘서 편하게 있었던 것 같다.”

 

선수가 아닌 지도자가 되면서 최근의 프로농구를 보면 아쉬운 점도 있다고 했다. “요즘 농구를 보면 화려해보이지만 속은 좀 비어 있는 느낌이다. 선수들이 너무 화려한 플레이만 쫓는 것 같다. 좋은 것만 하려고 하고 힘든 건 잘 안 하려고 한다. 수비도 너무 뺏으려는 수비만 하려 한다. 우리학교 선수들도 어려운 유로스텝을 하려고 하는데, 정확하게 레이업을 마스터 한 다음에 하라고 한다. 기본기를 갖추고 난 다음에 다른 기술을 해도 늦지 않는다.” 화려한 플레이를 맹목적으로 비판하는 게 아닌, 기본을 먼저 하라는 메시지였다. 그는 현역 시절 수비 5걸에도 선발됐었을 만큼 수비가 좋은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는 수비 노-하우에 대해 “수비는 악착같이 하면 된다. 그게 90%다. 요즘 좋은 수비수로 꼽히는 희종이가 정말 열심히 한다. 수비도 재밌다. 패스 길을 읽다 스틸을 하면 분위기가 바뀐다. 수비는 뺏는 것보다 막는 게 더 중요하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지도자로서 목표에 대해 물었다. 팀을 맡은 지 1년이 채 안 된 만큼,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을 것 같았다. “양정고 농구부는 전통과 역사가 있는 팀이다. 선수들을 어느 정도 단계에 올려놓는 게 목표다. 아이들이 발전하면 나도 보람을 느낄 것 같다. 상위권 팀들과는 아직 비교할 수 없지만, 중상위권 팀으로는 올리고 싶다. 한 번쯤 강팀들을 꺾고 결승전에도 오르고 싶다.”

 

현역 시절, 가는 팀마다 필요한 역할을 충실히 해냈던 황진원. 이처럼 선수 시절 쌓은 풍부한 경험은 지도자가 된 그에게 든든한 자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 -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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