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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일 농구의 대부' 황신철, 39년 발자취를 돌아보다
곽현(rocker@jumpball.co.kr)
기사작성일 : 2017-06-19 11:09

[점프볼=곽현 기자] 한 학교에서 오랫동안 지도자 생활을 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팀 성적은 물론이고, 학교 및 학부모와의 관계를 유지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한 학교에서 오래 활동하는 지도자들이 갈수록 줄고 있다. 몇 번 우승을 해도 순식간에 자리의 주인이 바뀌는, 어찌 보면 프로농구보다도 더 비정한 곳이 바로 오늘날 아마농구 무대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선일 농구의 ‘대부’ 황신철(65) 코치의 퇴임이 시사하는 바는 대단히 크다. 황신철 코치는 선일초에서 시작해 여중, 여고로 이어지는 39년간의 긴 지도자 경력을 마치고 박수와 함께 코트를 떠나게 됐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황 코치는 2월 27일 퇴임식을 가졌다. 1978년 선일초등학교 코치로 부임한 이래 선일여중, 선일여고 등 ‘선일’에서만 39년을 지냈다. 이날 퇴임식을 맞아 많은 제자들과 농구인, 그리고 학교 관계자들이 찾아 축하 인사를 건넸다. 프로선수 중에는 김연주(신한은행), 김가은(KB스타즈)등이 참석했다.

 

노력하면 안 될 게 없더라

퇴임식 후 며칠이 지나 황 코치의 집 근처인 중계동의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이제 실업자 됐으니 시간 많지 뭐.” 황 코치는 오랜만에 만난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요즘 그는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일단 매일 가던 학교를 가지 않다보니 일과가 달라졌다. 그의 집이 있는 중계동부터 선일여고가 있는 갈현동까지는 거리가 꽤 된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했다고 하니, 못해도 매일 왕복 3시간 가까이를 지하철에서만 보낸 셈. 황 코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런 건 생각 안 해봤어. 아이들 가르친다는 보람에 다녔던 것 같아”라고 말했다. 일단 이 3시간이 사라졌다. 허전하진 않을까. “남자는 놀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 무슨 일이든 계속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

 
황신철 코치는 선일 농구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선일여고의 경기가 있을 때면 벤치에서 카리스마를 내뿜는 그를 볼 수 있었다.

 

“힘들기도 하고 좋을 때도 있고 그랬는데, 퇴임하고 보니까 정말 힘들었던 과정이 많았던 것 같아. 하고나서 보니까 허무하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직장에서 근무를 했다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러워. 그동안 함께 했던 감독, 부장 선생님들 중에 정말 좋은 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 작고하신 이선룡 이사장님께서 날 정말 잘 챙겨주셨지. 교장실에 자주 불러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고…. 나처럼 교장실에 자주 들어간 사람도 없을 거야.”

 

그가 물러난 선일여고는 박민혜 신임코치가 맡게 됐다. 박 코치도 황 코치의 선일여고 제자다. “나보다 더 잘 할 거야. 아주 야무지거든.” 황 코치는 제자에 대한 신뢰도 크다고 말했다.

 

사실, 선수로서 그의 경력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중학교 시절 야구를 했던 그는 동대문상고 시절 농구를 한 경력이 전부다. 대학에선 농구를 하지 않았다. 그런 그는 대학 졸업 후 여자초등학교 코치로 처음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어느 초등학교였는데 이름이 잘 기억이 안 나. 농구협회 추천을 받아서 갔는데,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었어. 처음부터 봉급을 받았는데, 그런 사람이 흔치 않았거든. 그 땐 맨땅에서 운동할 때야. 눈이 오면 눈 치우고 농구를 했었지.”

 

이후 숭의초등학교로 옮겨 코치를 하던 그는 당시 라이벌이었던 선일초등학교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선일과의 운명같은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당시 나를 스카우트하신 분이 이봉학 전(前) 초등연맹 회장님이셨어. 당시 선일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셨는데, 나를 이끌어준 분이지. 그분께 정말 감사해. 선일초등학교를 갔는데 체육관이 정말 좋았어. 코트가 3개나 되더라고. 그 때는 그런 데가 없었어. 아이들이 농구하기가 정말 편했었지.”

 

그는 이내 지도자로서 아이들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졌다. “농구를 해보니까 매력이 있더라고. 승부도 있지만, 아이들이 내가 가르친 거 이상으로 해낼 때 보람을 느꼈어.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나도 아이들한테 많이 배웠어. 가르치면서 배운 거지.”

 

그렇다면 농구를 전문적으로 하지 않았던 그가 어떻게 이처럼 오랫동안 농구 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었을까. 황신철 코치는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다른 이들의 지도 방식을 많이 보며 배우기도 하고, 때로는 자문도 구했다”고 돌아봤다.

 

“잘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가르치는지 몰래 엿보고 그랬지. 몰래 가서 적기도 하고, 경기 끝나면 물어보기도 하고…. 유수종 감독이 대표팀 감독할 때 많이 가르쳐줬어. 임영보 감독님도 많이 알려주셨고, 김윤 감독님에게도 많이 배웠지.”

 

그가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늘 가슴에 품어온 좌우명은 ‘하면 된다’였다. “코트 센터써클에 그렇게 써놨었지. 근데 그렇게 하니까 정말 되더라고.”

 

 

전주원, 이경은 등 스타 선수 발굴

지금까지 선일을 거친 농구스타들은 대단히 많다. 여자농구 레전드라 불리는 우리은행 전주원 코치를 비롯해 허윤자(삼성생명), 김연주(신한은행), 이경은(KDB생명), 김가은(KB스타즈), 신지현(KEB하나은행) 등이 그의 가르침을 받고 프로에서 활약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자라 할 수 있는 전주원 코치는 황신철 코치에 대해 “선생님한테 축하드리는 게 맞는 거냐고 여쭤봤다(웃음). 선일에서 40년 가까이 계시면서 많은 인재를 길러내셨고, 여자농구의 발전을 위해 정말 많이 노력하셨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가 전승 우승을 했다. 그 때는 훈련도 즐겁게 했다. 좋았던 기억밖에 없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황 코치는 제자들이 잘 성장해 살아가는 것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농구선수로서 경력을 이어가는 제자들의 경기는 잊지 않고 챙겨본다. “(전)주원이는 노력형이야. 운동신경도 뛰어나고 머리도 좋았던 것 같아. 이경은, 신지현도 다 장점이 있었어. 머리가 똑똑한 선수들이었지. 아마 공부를 했어도 잘 했을 거야. 이름이 알려진 선수들뿐만 아니라, 이름이 안 알려진 선수들 중에서도 잘 한 친구들이 정말 많았지.”

 

그 외 그는 농구선수로 남지 않은 제자 중에서도 자랑스러운 이들이 많다고 했다. “채데레사라는 제자가 있어. 중3때까지 내가 가르쳤는데, 그 때 랭킹 1위였어. 근데 더 이상 키가 안 크더라고. 그래서 대화를 했지. 공부를 해도 충분히 잘 될 수 있겠다고. 그러더니 시험을 보고 서울대에 합격을 했어. 체육교육과를 나와서 지금은 학교 교사를 하고 있지. 이번에도 찾아왔더라고. 잊지 않고 찾아주고 식사대접도 해줘. 어찌나 고마운지.”

 

지도자를 하면서 가장 기억나는 순간으로는 1997년 숭의여고와의 경기를 꼽았다. “그 때 연장전을 3번이나 했어. 숭의여고에는 이옥자 감독이 있었지. 그 분한테는 좀 미안했는데, 우리가 3차 연장 끝에 어렵게 이겼어. 숭의여고에는 김계령, 우리 학교엔 허윤자가 있을 때였지. 그 땐 허윤자가 엄청 잘 했어. 나가는 경기마다 다 이길 때였지.”

 

선일초에서 3년, 선일여중에서 3년,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선일여고에서만 보냈다. 지도자 생활 동안 우승을 총 몇 번이나 한 것 같냐는 질문에 “정확히 안 세어봐서 잘 모르겠어. 한 100번은 하지 않았을까 싶어”라고 말했다. 그만큼 그는 지도자 생활 동안 숱한 우승을 차지하며 선일여고를 명문으로 이끌었다.

 

지도자로서의 철학이 있냐는 질문에 “나보다 더 훌륭한 제자를 많이 키워내는 게 목표였어. 또 사회에 나가서 잘 되게 하고 싶었어. 교육 쪽으로는 아이들에게 채찍질보다는 칭찬을 많이 해준 편이야. 농담도 많이 하려고 했고. 아이들과 너무 세대차이가 나면 안 되니까.”

 

황 코치는 고등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외모도 최대한 젊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염색도 하고, 옷도 신경 써서 입고, 늘 깔끔하게 하고 다녔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의 또래들보다 훨씬 더 젊어보였다. “교장선생님께서 그러시더라고. 늘 젊게 하고 다니라고. 염색도 하고, 깔끔하게 하고 다니라고. 그래야 선수들이 우리 선생님은 늙었다고 안 할 거 아니냐며 말이다(웃음).”

 

언제든 농구계에 종사하고픈 마음

“그때는 몰랐어. 근데 지나고 나서 보니까 정말 고맙더라고. 아내가 없었으면 내가 이렇게 지도자 생활을 못 했을 거야. 아내한테 정말 고마워.” 황 코치는 40여년간 지도자 생활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은 뒤에서 묵묵히 뒷바라지를 했던 아내의 도움이 있었다고 전했다.

 

“내가 결혼을 늦게 했어. 사실 결혼도 안 하려고 했지. 지도자들은 결혼을 하기 힘들겠더라고. 온 신경을 다 지도에 쏟아야 하니까. 아내와는 선을 봐서 만났는데, 내가 쫓아다녔어. 내가 여자한테 쫓아다닌 건 처음이었지. 지나고 보니까 아내한테 정말 고마워. 그 사람 덕분에 내가 지금까지 지도자를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는 최근 줄어들고 있는 여자농구 인프라에 대해 걱정을 전하기도 했다. “요즘은 아이들을 많이 안 낳는 추세니까. 학교에도 학생 수가 엄청 줄었어. 한 반에 30명도 안 되는 것 같아. 또 힘든 운동을 안 시키려고 해. 여고농구팀이 보통 6~7명 정도밖에 안 되더라고. 안타까운 현실이지.”

 

황신철 코치는 앞으로도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언제든 농구계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생의 새로운 쿼터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농구에 대한 열정과 애정은 살아있었던 것이다.

 

“유소년 아이들을 가르쳤으면 좋겠어. 생각해보면 내가 초등학교 코치 때 정말 열정적으로 했거든. 초등학교 때 기초를 잘 닦아야 좋은 선수가 된다고 생각해. (전)주원이도 키가 작았어. 근데 눈빛이 살아 있더라고. 기초를 잘 배우면서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 어디에선가 날 불러주면 농구계를 위해 봉사하고 싶어. 한국농구가 잘 될 수 있는 길이라면 도와야지.”

 

+ BONUS ONE SHOT +
제자들이 말하는 황신철 코치

전주원(우리은행 코치)
선생님께 축하드리는 게 맞는 거냐고 여쭤봤다(웃음). 선일에서 40년 가까이 계시면서 많은 인재를 길러내셨고, 여자농구의 발전을 위해 정말 많이 노력하셨다. 선생님께 정말 감사하고 수고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가 전승 우승을 했다. 그 때는 훈련도 즐겁게 하고, 좋은 기억밖에 없다.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은 선일 출신 졸업생들이 각 분야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이경은(KDB생명)
농구를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분이다. 중학교 때까지는 그냥 시키는 대로 했다면, 고등학교 때는 선생님께 배우면서 농구의 즐거움을 알았던 것 같다. 프로에 와서도 그렇고 개인기를 위주로 가르쳐주신 분들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선생님께는 개인기술을 많이 도움 받았던 것 같다. 그게 몸에 익으면서 농구가 재미있다고 느끼게 됐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연습경기 위주로 훈련을 많이 했다. 실업팀, 프로팀, 남자팀, 연예인팀과도 했던 기억이 난다. 3학년 때는 성적도 좋았다. 전국체전을 비롯해 3~4번 우승을 했다. 그 때처럼 운동을 즐기면서 한 적도 없는 것 같다.

 

김연주(신한은행)
농구를 재밌게 생각하게 해주신 선생님이셨다. 고등학교에 가면 체력훈련을 위주로 많이 하는데, 우리는 다양하게 훈련을 시키셨다. 고등학생이 따라 하기 힘든 훈련도 있었는데, 자꾸 새로운 걸 시도하게 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농구하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많다. 늘 웃으면서 했다. 점심 먹으러 갈 때도 자유투를 먼저 넣는 사람이 가서 먹기도 했다. 선생님 은퇴식 때도 선배님들이 정말 많이 오셨다. 학교 이사장님 퇴임식 때도 그만큼은 안 왔을 정도라고 하셨다. 늘 감사했고,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주신 분이다. 은퇴하셨지만, 앞으로도 농구장에 자주 오셨으면 좋겠다.

 

김가은(KB스타즈)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셨고, 여자농구에도 정말 오래 계셨다.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한테 여러 가지를 배웠다.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강조하셨고, 여러 시도를 하게 해주셨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재밌는 농구를 할 수 있었다.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하도록 하셨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은 강압적인 분위기가 아닌,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좋아하셨다. 나이 차이는 많이 났지만, 우리랑 소통을 많이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세대차를 안 느끼게 하도록 더 노력하시지 않았나 생각한다. 선생님 퇴임식 때 찾아뵀는데, 예전보다 나이도 더 드시고 수척해보이셔서 애잔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는 카리스마가 굉장했었다. 선생님께 농구를 배울 수 있어서 감사했고, 농구 하면서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선생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신지현(KEB하나은행)
정말 감사한 분이다. 선생님 덕분에 고등학교 때 농구를 정말 재밌게 했던 것 같다. 늘 분위기를 밝게 해주셨고, 긍정적인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선생님께 농구를 잘 배운 것 같다. 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임했다. 고등학교 때 선수 숫자가 적어서 4명이서 경기를 하고 이긴 적도 있다. 힘들었는데 선생님께서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주셨다. 61점을 넣었을 때도 기억에 난다. 오랫동안 수고 많으셨고, 늘 존경하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 사진=문복주, 신승규 기자, 황신철 코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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