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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강혁 : 그대는 영원한 PICK N’ ROLL 마스터
곽현(rocker@jumpball.co.kr)
기사작성일 : 2017-05-09 08:54

[점프볼=곽현 기자] 삼성은 9시즌(2003~2011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오른 전통의 강호였다. 많은 스코어러가 팀을 거쳤지만 그의 자리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현역시절 KBL 최고의 ‘픽앤롤 마스터’로 꼽힌 강혁(41)이다. 현역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유망주를 육성해온 강혁 코치는 최근 KBL 무대로의 복귀가 결정됐다. 창원 LG 신임감독으로 임명된 현주엽 코치의 부름을 받아 코칭스태프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그는 김영만 코치, 박재헌 코치와 함께 2017-2018시즌을 준비하게 됐다. (본 기사는 점프볼 4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 강혁, 모교 코치로 돌아왔던 사연

삼일상고 농구부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팀이다. 체육관에 들어서자마자 천정에 설치돼 있는 수많은 우승 배너가 눈에 들어왔다. 강혁 코치를 비롯해 김성철(동부 코치), 양희종(KGC인삼공사), 하승진, 김민구, 송교창(이상 KCC) 등 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을 배출했다. 삼일상고는 송교창(KCC), 박정현(고려대)이 있던 2015년 고교 최강으로 올라섰고, 지난해에도 하윤기, 김준형(고려대), 양준우(성균관대), 이현중을 주축으로 남고부 강팀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강혁 코치가 처음 지휘봉을 잡았던 2013년만 해도 지금처럼 강팀은 아니었다.

 

“처음에 왔을 땐 매번 졌어요. 코치들이 자주 바뀌어서 어수선했죠. 그때는 교창이가 아직 1학년이라 어렸어요. 대회에 나가면 1승도 버거웠죠. 처음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깜짝 놀랐어요. 제가 고등학생일 때보다도 아이들 수준이 낮더라고요. 신체조건은 좋아졌는데 기본기가 떨어졌어요. 몸도 약했죠.”

 

결국 그는 기본기부터 다시 시작했다. 미래를 내다보고 팀을 운영한 것이다. “기본기부터 했어요. 2년 정도 내다보고 했죠. 그러니까 아이들이 조금씩 좋아지는 게 보이더라고요. 아이들도 자발적으로 야간훈련을 하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고 했죠.”

 

실력이 늘면서 보람도 느꼈다. 선수들을 가르치는 일에서 ‘설렘’을 느꼈다. 무엇보다 자신이 농구스타를 꿈꾸며 땀 흘린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삼일상고에 오게 될 줄은 몰랐죠. 힘든 과정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왜 지도자들이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는지 알겠더라고요.” 강혁 코치의 말이다.

 

그렇다면 그의 고등학생 시절은 어땠을까? “힘들었죠. 운동량도 엄청 났고, 밥 먹고 뛰는 훈련만 했어요. 선배 뒤치다꺼리하고, 버스, 전철 타고 대회 다니고 그랬어요. 스킬 트레이닝 같은 것도 없었어요. 대학도 훈련이 힘들기로 유명한 경희대로 갔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힘든 운동들이 프로에서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코트에서 뛰는 게 행복했어요

“선수와 지도자 중 어떤 일이 더 재밌으세요?”

 

여느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강혁 코치의 선택도 ‘선수’였다. 2013년 후배들의 헹가래를 받으며 코트를 떠난 지 어느덧 5년. 그는 여전히 코트의 치열함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선수 때가 좋다’는 말도 실감한단다.

 

“선수가 더 재밌죠. 덜 힘들고요. 예전에는 ‘끝까지 해라. 선수 때가 좋은 거다’라는 선배님들 말이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제는 알겠어요. 지금 선수들도 모를 거예요. 밖에 나오면 얼마나 힘든지, 돈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 말이죠. 선수 때는 내 몸 관리만 잘 하고,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되니까요. 학교에선 아이들 챙겨야지, 부모님들 신경 써야지. 스카우트도 해야지. 신경 쓸게 참 많더라고요.”

 

그래도 그 와중에 기분 좋은 성과도 있었다. 강혁 코치의 제자이자 KCC 포워드 송교창이 이번 시즌 KBL의 기량발전상(MIP, Most Improved Player) 수상자가 된 것이다.

 

사실, 송교창은 여느 제자들과는 다른 길을 택한 선수다. 대학을 가지 않고 프로에 직행했기 때문. 우려는 있었지만 그는 불과 2시즌 만에 KCC의 주전이 되고, 올스타에 선정됐다. 그런 송교창을 바라보는 강혁 코치의 평가는 어떨까?

 

“교창이는 농구를 정말 좋아해요. 학교에 있을 때도 앞장서서 야간 훈련을 했어요. 교창이 덕에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훈련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죠. 좀 껄렁댄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그게 원래 걔 스타일이에요. 농구에 미친 아이에요. 정말 열정적이죠. 프로에서 좋은 선수가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고마워요.”

 

강혁 역시 송교창과 같은 길을 걸었다. 매 시즌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에는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가드가 됐다. 1999년 삼성에 입단해 식스맨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던 그는 상무 제대 후 주전으로 도약, ‘명가 삼성’의 KBL 전성기를 이끌었다. “저는 참 복이 많았던 선수였어요. 지도자 복이 많았죠. 안준호 감독님과 7년을 함께 있었어요. 감독님께서 절 믿어주시고, 제가 할 수 있는 플레이를 많이 하게 해주셨던 것 같아요.”

그 플레이는 바로 2대2 플레이였다. 강혁이 장신 선수와 주도하는 픽앤롤, 픽앤팝 플레이는 리그 정상급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이전에는 수비하고 열심히 뛰는 게 제 역할이었어요. (김)병철이 형(오리온 코치) 플레이를 많이 보고 따라하려고 했어요. 실책도 많이 나왔지만, 무서워하지 않고 계속 시도한 덕분에 색다른 패스를 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아이들한테도 항상 강조해요. 부딪쳐보라고요. 공격적으로 해야 상대 수비가 나오고 공간이 생기거든요.”

 

그렇다면 그가 기억하는 최고의 2대2 파트너는 누구일까? “국내선수 중에선 (서)장훈이 형이요. 섬세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에요. 2대2 플레이를 할 때 장훈이 형이 많이 알려줬어요. 공격적으로 하라고요. 주위에서 저에게 왜 장훈이 형한테만 패스를 주냐고 하기도 했는데, 장훈이 형이 빈 공간을 잘 찾아 움직이니까 준 거죠(웃음). 외국선수 중에선 애런 헤인즈와 네이트 존슨을 꼽고 싶어요. 헤인즈는 지금도 뛰고 있지만, 머리가 정말 좋고, 저와 잘 맞았어요. 존슨도 영리했어요.”

 

강혁의 농구인생 하이라이트는 2005-2006시즌이었다. 삼성은 챔프전에서 모비스를 만나 KBL 최초로 4-0 퍼펙트 우승을 달성했다. 그는 챔프전에서 맹활약(17.3득점 6.5어시스트 1.3스틸)을 펼치며 MVP에 선정됐다.

 

 “그 시즌 6라운드에서 제가 왼쪽 무릎을 심하게 다쳤어요. 인대가 다 파열됐죠. 시즌아웃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4강에 직행한 덕분에 제게 한 달 정도 시간이 있었어요. 매일 목욕탕에서 재활훈련을 했어요. 그 한 달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모비스를 이기고 우승을 했는데, 인터뷰도 못 했어요. 경기가 끝나니까 걷지도 못 하겠더라고요. 신기하게도 뛸 때는 컨디션이 좋았어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다 됐죠. 행운이 따랐던 것 같아요.”

 

그가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출전을 감행하고, 코트를 떠나길 거부했던 배경에는 ‘절박함’이 있었다. “비시즌 때 휴가를 받았는데, 일주일만 쉬고 바로 숙소로 들어왔어요. 운동을 정말 많이 했죠. 시간이 아까웠거든요. 근데 다치니까 서럽고 눈물 나더라고요. 노력한 만큼 대가가 온다고, 저에게 행운을 주신 것 같아요. 코트에서 뛰는 게 너무 좋았어요. 행복했죠. 지금도 마음속으로 ‘한 달만 운동하면 뛸 수 있을거야’란 생각을 하기도 해요. 그럴 때면 ‘내가 아직도 농구를 좋아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죠(웃음).”

▲ 위기를 기회로 만든 전자랜드行

삼성의 프랜차이즈 선수로 뛰던 그에게 시련이 닥친 건 2011년이다. 삼성이 그를 전자랜드로 트레이드한 것이다. 팀의 상징과도 같은 그의 이적 소식은 팬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강혁도 마찬가지였다.

 

“농구하면서 그 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군대 있던 기간까지 합치면 삼성에서 12년을 있었으니까요. 사실 그때 은퇴를 결정했었어요. 팀에도 자유계약선수(FA)로 안 잡을 거면 놔달라고 했어요. 삼성에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고요. 근데 절대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냉정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때 술도 많이 마셨어요. 가족들과 얘기를 하면서 ‘이제 그만하자’ 했어요. 그런데 그때 유도훈 감독님께서 전화를 주셨어요. 함께 하자고요. 제가 아깝고 필요하다고 하시다고요. 죄송하다고 했어요. 이제 농구에 미련 없다고요. 그리고 아내와 얘기를 했는데, 저보고 ‘농구를 하고 싶냐’고 묻더라고요. ‘농구는 하고 싶다’고 했어요. 근데 상황이 안 돼서 허락이 안 된다고도 말했어요. 자존심이 있었던 거죠.”

 

은퇴 갈림길에서 고민하던 그는 결국 전자랜드로의 이적을 결심했다. 자존심을 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택한 것이다. “가고 나서 보니 잘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임감도 더 갖게 됐어요. 삼성한테 고마운 마음도 들었어요.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전자랜드에서 그는 고참으로서 팀에 경험을 불어넣어줬다. 그리고 전자랜드의 2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공헌했다.

 

강혁은 전자랜드에서의 마지막 2년을 잘 보내면서 선수 생활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유도훈 감독님과 2년을 함께 했는데, 힘든 시기에 절 많이 잡아주셨어요. 또 감독님이 열정적으로 지도하시는 모습을 보고 많이 배웠죠. 감독님은 선수들에게 좋은 멘토였어요. 제가 지도자 복이 많아서 이만큼 농구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제가 몸 자체가 약한 편이에요. 빠르지도 않고, 화려한 플레이도 못 했지만, 지는 건 정말 싫어했어요. 또 고등학교, 대학교 때 힘든 시간을 끝까지 버텼던 덕분에 오랫동안 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삼일상고에서 그가 꿈꾼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상은 무엇이었을까. 당시 그에게 ‘앞으로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강혁은 ‘제자와 소주 한 잔 같이 기울일 수 있는 코치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학교다보니 농구도 가르치지만 인성도 가르쳐야 하잖아요. 농구도 잘 하고 인성도 바른 아이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졸업해서 찾아오면 편하게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사제지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게 보람일 것 같아요.”

 

이제 그는 LG에서 새롭게 커리어를 시작한다. “농구에 대해 더 공부를 하고 싶었고, 선수들을 가르쳐보고 싶기도 했다”는 강혁 코치. 그는 LG 코칭스태프 합류를 ‘새로운 도전’이라 표현했다. 과연 이번 도전은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또 기대된다.


#사진 - 문복주, 유용우 기자,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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