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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C 송교창 어머니가 말하는 ‘아들’ 송교창
강현지(kkang@jumpball.co.kr)
기사작성일 : 2017-05-08 09:43

[점프볼=강현지 기자] 모든 프로선수가 그렇겠지만, 종목을 불문하고 대다수가 학창시절부터 힘든 훈련을 이겨내고 꿈을 이루었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한창 부모님께 투정부릴 시기에 합숙생활을 통해 인내를 배우고, 방학기간은 물론이고 명절과 공휴일도 반납한 채 훈련에 임한다. 주변 유혹도 이겨내며 말이다. 고교 졸업 후 프로에 직행한 송교창도 그 중 하나였다. 또래와는 다른 결정을 내리고 먼저 프로선수가 된 그는 형들과의 경쟁을 이겨내고 겨우 21살의 나이에 주전 선수로 우뚝 섰다. 한술 더 떠서 2년차인 올 시즌에는 ‘기량발전상’까지 수상했다. 그의 승승장구 뒤에는 남모를 아픔도 있었을 터. 송교창의 어머니, 곽지은(49) 씨는 그런 아픔을 내색 한 번 없이 이겨낸 아들이 대견하기만 하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야구 대신 농구

송교창은 농구공보다 야구공을 먼저 잡았다. 용인 역북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리틀 야구단 모집 현수막을 보곤 야구가 해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몇 달 정도 했죠, 포지션이 투수였는데, 재미없다고 안 하려고 하더라고요.” 운동을 그만두니 신체 활동이 줄었다. 집에서 책만 보는 시간이 늘었던 것. 그래서 이번에는 농구교실을 보냈다. 수원에 있는 김훈 농구교실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금세 재미를 붙이더니 ‘농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닌가.

 

“녀석이 농구교실을 다닌지 2주만에 농구선수가 되겠다는 거예요. 저는 말도 안 된다고 말렸어요. 선생님께서도 ‘힘도 없고, 체격이 왜소해서 힘들 것 같다. 취미로 시키세요’라고 말렸죠.”

 

그렇게 끝날 뻔했던 농구와의 인연은 중학교에서 이어진다. 소현중학교에 입학했던 1학년 송교창은 중1 여름 방학이 끝난 후 삼일중으로 전학을 갔다. ‘농구’라는 두 글자가 다시 한 번 송교창의 마음에 노크했다. 이번만큼은 말리지 않았다. 아버지 송희수(54) 씨가 적극 나섰다.

 

“그때 교창이 키가 185~6cm 정도 되다보니 관심을 가지시더라고요. 그래서 입단 테스트를 봤죠. 그때가 여름 방학 때였는데 아이에게 ‘방학 때만 해봐’라고 했죠.”

 

‘잠깐’일 줄 알았던 농구, 어느덧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처음 한 달은 체력 훈련만 했는데, 훈련 강도가 높다보니 구토도 했다더라고요. 그런데 제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더군요. 농구를 늦게 시작했으니 1년 유급해서 기본기를 다지자는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그렇게 해서 삼일중, 삼일상고를 거치면서 지금의 교창이가 됐어요.”

▲ 자존감이 강했던 아이

송교창이 운동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어머니와 아들의 기억이 조금 다르다. “어느 인터뷰에서 교창이가 ‘공부가 하기 싫어서 야구를 하게 됐다’고 말했더라고요.” 

 

하지만 어머니의 기억은 달랐다. “교창이는 어릴 때 공부 잘했어요. 과목 마다 94~5점은 받았죠. 그래서 내심 의사가 됐으면 하는 바람도 가졌을 정도였죠. 어렸을 땐 순하고, 자존감이 강했어요. 논술 학원 선생님이 ‘교창이는 자존감이 높은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머니가 말을 이어갔다.

 

“그때 논술학원 수업 중에 선생님이 형제, 자매가 다 있는 학생들에게 ‘내가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을 들어라’라고 물었대요. 보통 형제, 자매가 있는 아이들을 보면 ‘우리 엄마는 동생을 더 좋아해, 형을 더 좋아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근데 그때 교창이 혼자 손을 번쩍 들었다더군요. ‘우리 엄마는 나를 가장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면서요. 그때 논술 선생님이 참 교창이가 자존감이 높은 것 같다고 말씀하셨죠.”

 

어렸을 적 송교창은 논술학원과 한문학원을 다녔다. “한문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논리적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학원 두 군데를 보냈어요. 그러다 5학년 때 한문 3급 자격증을 땄어요. 이게 큰 도움이 됐죠. 농구 선수들도 한문 자격증 7~8급을 보유해야 하고, 국사 시험도 80점 이상 받아야 했는데, 교창이는 한자 3급 자격증을 딴 덕분에 가볍게 패스했죠.”

▲ 한 달 용돈 3천원

어느덧 사회인이 된 송교창. 하지만 프로선수가 된 뒤 월급 관리는 아직 어머니에게 일임하고 있다. 많이(?) 버는 만큼 이제는 용돈도 제법 타쓰지만 불과 2~3년 전만해도 송교창의 한 달 용돈은 겨우 3천원이었다. 커피 한 잔, 혹은 우동이나 라면 한 그릇 값 정도다. 그 돈으로 송교창은 30일을 살았다.

 

“돈에 군내가 난다고 했었어요(웃음). 간식 챙겨서 보내고, 학교에만 있으니깐 돈 쓸 일이 없었던 거죠. 기껏해야 그 3천원으로 후배들과 PC방을 가면 그 비용을 대신 내주는 게 다였어요. 그리고 교창이가 주전부리를 잘 안 먹어요. 몸에 좋은 것들만 먹고, 탄산음료도 웬만하면 잘 안 마셔요. 자리 관리가 철저하죠.”

 

송교창의 코디도 어머니 작품이다. 해외 직구 사이트를 뒤져보지만, 198cm에 89kg인 아들 몸에 딱 맞는 옷을 구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렇게 찾아서 사주면 사다주는 대로 입어요. 그러면 큰 아이가 ‘나도 좀 코디해줘요’라고 하기도 하죠. 하하.”

▲ 의젓한 아들 셋

송교창은 삼형제 중 둘째다. 위로 3살 형이 있고, 아래로는 연년생인 동생이 있다. 형도 송교창처럼 일찍 자신의 길을 찾아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호창(형)이는 생활력이 강해요. 지금은 컴퓨터 관련 사업을 하고 있어요. 대학을 가지 않고, 군대에 빨리 다녀왔어요. 어느 날 갑자기 사업을 시작하겠다더니, 그 뒤로는 부모에게 손 한번 벌리지 않았죠. 여러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하더니 최근에는 남편에게 세무 상담도 하더라고요.”

 

셋째 한창 씨(20)는 목공 일을 배우는데 한창이다. 그렇다면 운동하는 둘째 아들의 뒷바라지에 집중하느라 두 아들에게 소홀했던 부분은 없었을까. 이 대목에서 큰 형인 호창 씨의 의젓함을 엿볼 수 있었다. “교창이 경기를 보러 지방을 다녀야 했는데, 아들들에게 미안했어요, 하루는 큰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니 ‘나는 교창이보다 3년 더 많이 사랑을 받았으니 막내를 신경을 써 달라’고 하더라고요. 막내에게 미안했죠. 교창이가 다소 늦은 중학교 때 농구를 시작해서 그나마 다행이었죠. 농구를 시작할 무렵에는 막내가 거의 큰 상태였거든요.”

 

코트 위에서도 나이에 걸맞지 않는 성숙함과 의젓함을 보이고 있는 송교창. 어쩌면 그의 이러한 면모는 집안내력(?) 덕분은 아니었을까.

LETTER |

어머니가 아들에게
프로무대에서 뛰는 네 모습을 보면 아직도 꿈인 것 같고, 늘 감동이란다. 고3 전국체전 때 ‘고생하셨어요’라는 그 한 마디가 어찌나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이번에 사진 고르면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데 이렇게 잘 자라줘서 감사함에 또 한 번 울었단다(웃음). 행복하게, 즐겁게 네 일 하면서 건강 하렴. 부상 없이! 고맙고, 사랑한다~ 아들♥

 

아들이 어머니께
그간 저 뒷바라지 해주시느라 고생하셨는데, 제가 앞으로 더 잘해서 호강시켜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깐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해요! 사랑합니다~!

 

#사진=송교창 부모님 제공,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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