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공유 페이스북공유
  • 글자크게
  • 글자작게
  • 인쇄하기
  • 스크랩하기
[MY FAMILY] 허웅·허훈 어머니, 이미수 씨가 말하는 우리 아들
강현지(kkang@jumpball.co.kr)
기사작성일 : 2017-03-02 10:53

[점프볼=강현지 기자] “어머니! 허웅, 허훈 선수 어렸을 적 사진 좀 골라주세요”라는 필자의 부탁에 웅,훈의 어머니는 인터뷰 장소에 커다란 캐리어 가방을 가져왔다. “내가 선택하는 것 보다 기자님들이 원하는 그림들이 있으시더라고. 직접 선택도 하시고, 보면서 이야기하면 더 좋을 것 같아서…(웃음)”라며 어렸을 적 추억들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농구 선수의 아내이자 어머니의 길을 걸으며 숱한 인터뷰에 참여해 본 터라 준비도 남달랐다. 이미수 씨는 사진 하나하나를 살피며 두 아들 웅이·훈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잡지 점프볼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공부 잘하던 큰아들
어렸을 적 허웅은 나갔다 하는 대회마다 1등을 휩쓰는 똘똘한 아이였다. 각종 경시대회마다 금상, 최우수상을 휩쓸었고 초등학교 때는 반장을 놓친 적이 없었다고. “웅이는 어렸을 때 승부욕이 대단했어요. 전날 해외를 다녀와서 새벽에 도착해도 학교는 꼭 가겠다는 아이였죠. 영어·수학 경시대회에서 대통령상까지는 못 받더라도 금상, 최우수상은 휩쓸었어요. 올 백 점을 받을 때까지 재시험을 치자는 아이였다니까요(웃음).” 공부도 야무지게 잘했던 만큼 암기력도 좋았다. 웅변 학원 원장님께도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나간 대회에서의 결과는? 단연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웅이가 2학년 때 5, 6학년들이 외우는 걸 금방 외우더라고요. 한 시간 정도 집중하면 금세 암기했죠. 덕분에 웅변대회에서도 전국남녀웅변대회에서도 대상을 받았어요. 이렇게 똘똘했으니 운동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반대했죠.” 덕분에 깔끔한 와이셔츠를 입고 조례시간에 단상에 오르는 일도 많았다. 왜? 상을 받으러.

 

운동에 뛰어났던 작은 아들
허훈도 부반장을 도맡으며 형의 뒤를 따랐다. 장래희망도 사촌 형들처럼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의사가 되어 형의 아픈 곳을 고쳐주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그의 꿈이 수정된 건 형 영향이 컸다. 2005년 허재 감독이 지도자 연수를 떠났던 미국에서 두 형제는 미국에서 잠시 학교에 다녔다. “당시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었어요. 웅이가 3시에 마치는 반면 훈이는 저학년이다 보니 일찍 마쳤죠. 그렇게 형을 기다리면서 훈이가 농구공을 잡기 시작 한 거죠.” 그렇게 잡기 시작한 농구, 피는 못 속인다고 했던가. 아버지, 형 못지않게 운동에서 두각을 드러냈고, 승부욕도 엄청났다. “훈이가 손등을 다친 적이 있어요. 한 달 정도 깁스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연고전을 뛰겠다며 혼자서 깁스를 톱으로 자르고 있더라고요. 의사인 사촌 형에게 떼를 썼는데, 교수님이 훈이 보고 이제 이 병원 오지 말고 다른 병원에 가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어요.” 훈이의 못 말리는 승부욕에 두 손, 두 발 다든 이미수 씨다.

 

누룽지 한 봉지
아들 둘을 둔 어머니가 자식에 대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다가 “딸을 원하지는 않았냐”는 질문이지 싶다. 앨범에 허웅이 가발 쓴 사진이 있어 필자도 웅,훈 어머니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사주에 아들만 여섯이라고 했어요”라고 답하며 웃었다. 차남인 훈이가 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제가 웅이 경기 보러 원주 다녀오고 하면 저녁 먹을 시간이 없더라고요. 경기 끝나고, 운전해서 서울로 돌아오면 밤늦은 시간이죠. 그 시간에 저녁을 먹고 하면 급체를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리고 혼자 있으면 엄마들은 그렇잖아요. 그렇게 밥 차려서 먹기가 귀찮아요. 빈속으로 아침에 사우나를 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걸 알고 훈이가 하루는 누룽지를 사왔더라고요. 아침에 끓여 먹고 나가라고.” 그간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리사랑을 보였지만, 이제는 성인이 된 아들이 어머니를 챙기는 것. 큰 선물은 아니었지만, 무심하게 던진 누룽지 한 봉지가 이미수 씨의 심금을 울렸다고.

 

스키장에서 생긴 일
“아들! 우리 여행 많이 다녔잖아!” 인터뷰에서 여행을 많이 못 갔다는 아들의 답변을 본 어머니가 해명(?)에 나섰다. 증거물은 앨범에 다 있었다. 숙소생활을 하는 운동선수의 특성상 여행을 많이 못 갔을 법도 한데 앨범에는 네 가족 여행 사진이 많았다. 특히 허 감독이 미국으로 지도자 연수를 떠났던 1년은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미국 문화를 느끼기 위해 여행을 많이 했어요. 당시 유니버설 스튜디오부터 유명 스키장 등 최대한 많이 가보려고 했죠. 국내에서는 우리끼리 여행을 가고, 남편보고 합류하라고도 했어요. 특히 강원도에 있었을 땐 스키장을 많이 갔죠.” 스키장과 얽힌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보통 국내 스키장 코스를 보면 짧은 코스가 많다. 반면 미국에 있는 스키장의 코스는 한 시간이 걸리는 코스도 있었다. “웅이는 길 따라 잘 내려왔어요. 근데 훈이는 어려서, 아빠랑 같이 내려오는데 길을 잃은 거예요. 둘이서 허리까지 눈 쌓인 곳으로 가서 엄청 헤맸다고 하더라고요. 해가 다져서 내려왔으니… 훈이는 엉엉 울면서 아빠한테 안겨서 내려왔죠. 전날 곰이 사람을 해치게 했다는 풍문이 있었거든요.”(웃음)

 

엄마가 미안해
이미수 씨가 아들에게 가장 미안했던 순간이 있었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웅이가 고3, 훈이가 고1때였어요. 당시 남편이 팀에서 플레이오프 우승(2008-2009)을 하고 우승 여행으로 괌을 갔었어요. 그런데 웅이가 그때 결승전 대회가 있어서 함께 하지 못했어요. 떠나는 날이 결승전이었죠. 다 같이 출발해야 한다고 해서 결국 아들 둘을 놔두고, 저희 부부만 다녀왔죠. 그게 그렇게 미안하더라고요.” 용산고 소속으로 경기에 나섰던 허웅은 당시 우승이 아닌 준우승을 거뒀고, 그렇기에 미안한 마음은 더 컸다. 또 한 번 미안했던 순간은 2014년 KBL 신인 드래프트 때였다. 당시 허웅은 얼리 엔트리로 프로 진출을 노려 전체 5순위로 원주 동부의 지명을 받았다. “그땐 우리 아이 생각만 한 것 같아요. 지금 되돌아보면 웅이에게도 미안하죠. 4학년이면 대학생활을 더 누릴 수 있었을 때인데… 지금 프로에서 자리를 잡은 모습을 보니 더욱 미안해지는 것 같아요.” (허웅은 2016-2017시즌 데뷔 3년 차를 맞이하며 동부의 주전 가드로 자리를 잡았다. 1월 17일 기준으로 허웅은 경기당 평균 33분 13초를 출전, 11.37득점 2.7리바운드 3.2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다.)

 

 

가족사진
지난해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허웅이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어렸을 적 이후 찍은 적이 없던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스튜디오 예약부터 의상준비까지 모두 마쳤다. 장남 덕분에 몇 년 만에 갖춰진 가족사진을 찍은 것. 이후 근사한 식당에서 식사도 했고, 와인 한잔을 곁들이며 오랜만에 네 가족이 뜻 깊은 시간을 보냈다. 허재, 허웅, 허훈 삼부자 하면 아버지를 쏙 빼닮은 코가 떠올라 어머니의 생각은 어떤지 물어봤다. “아들들은 콧대가 있잖아요. (하하). 콧대가 있어야 멋있죠. 남편은 그게 없어요. 하하.”

 

어머니의 꿈
허웅과 허훈의 어머니를 만난 건 1월 중순 어느 날. 연세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허훈이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난 며칠 뒤였다. 약속 장소와 시간을 잡기 위해 연락을 취하면 “미술관이에요” 혹은 “작품 보러 왔어요”라며 본인의 위치를 알렸다. 농구 감독의 아내, 농구 선수 자식을 둔 어머니로 지내다가 최근에는 여유가 생겨 전공 분야인 미술 공부에 시간을 쏟고 있다. 다시 작품 만들기를 시작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미술 학원을 찾아갔지만, 입시생들에게 치여 찬밥 신세(?)가 됐다며 푸념을 하기도 했다. “웅이와 훈이 흉상을 만들어 보려 해요. 이미 아들들 얼굴을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어뒀어요. ‘엄마 대체 사진만 찍고 언제 만들 거냐’라고 해요. 이런 작품 두세 개 정도 완성해서 전시회를 열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개인 전시회는 힘들 거 같고, 그룹 전시회에 참여해보려고요.”

 

BONUS ONE SHOT │ 서로에게 전하는 메시지
어머니가 허웅, 허훈에게
다치지 말고… 아무래도 운동선수니까 건강 챙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다른 말보다 크게 최우선인 것 같아요. 건강하게 코트에서 뛰는 것이요.

 

아들이 어머니에게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성장할 수 있게끔 받쳐주신 분이에요. 고등학교 때까지 집에서 생활했는데, 단 한 번도 아침을 거른 적이 없어요. 그 정도로 잘 챙겨주시고, 몸에 좋은 건 잘 챙겨주셨어요. 이제는 제가 효도할 일만 남았어요. 아! 이번에 대표팀 다녀와서 훈이랑 돈 모아서 어머니 선물을 해드렸어요. 어머니가 해주신 만큼 몇 배로 이젠 제가 해드려야죠. 꼭 효도할게요♥ - 허웅

 

어렸을 땐 잘 몰랐는데, 어머니 뒷바라지가 정말 감사한 일이란 걸 알았어요. 당연한 줄만 알았죠. 아버지랑 형이랑 저까지 뒷바라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매일 경기 챙겨보러 오시고, 간식 챙겨주시고…. 형과 제가 농구를 해야겠다는 그 순간부터요. 주변에서도 이런 어머니 없다고 이야기해주세요. 꼭 보답하려고요. - 허훈

 

# 사진_허웅·허훈 어머니 제공

<저작권자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최신 뉴스